-15-
구멍을 하나 더 뚫자 두 눈으로 방안을 훤히 볼 수 있었습니다. 허연 것의 정체가 또렷이 보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답니다. 웬 아줌마가 홀딱 벗고 누워있었고, 뒤통수만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홀딱 벗은 아줌마의 몸을 하얀 수건으로 연신 닦아주고 있었습니다.
저 아저씬 누구지? 어, 우리 아빠네... 저 아줌만 누굴까? 어, 우리 엄만데....
아하! 알겠습니다. 자상한 아빠가 피곤한 엄마를 목욕시켜 주나 봅니다. 아빠는 하얀 수건에 쑥물을 축여서는 엄마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줍니다. 배꼽이랑 눈이랑 코랑 귀 뒤쪽까지도 깨끗이 닦아줍니다.
아빠가 손가락이 잘렸을 때 엄마는 아빠를 씻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그랬는데, 반대로 아빠가 엄마를 씻겨주는 건 오늘 처음 보는 거랍니다. 좀 야릇한 생각에 얼굴이 화끈화끈합니다. 근데, 누가 보면 어떡하지... 엄마는 창피하지도 않은가...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잠꾸러기 엄마는 지금도 자고있나 봅니다.
유난히 살결이 하얗고 고운 엄마의 봉긋한 가슴이 보입니다. 말하긴 좀 창피하지만 나는 엄마가슴을 만지고 자는 버릇이 있답니다. 따끈하고 말랑말랑하고 아무튼 엄마가슴을 만지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답니다.
여기로 와서는 할머니가슴을 만지고 자는데, 다 큰 녀석이 징그러운 짓 한다며 싫어할 때가 많습니다. 야단칠 때만 큰애라고 그런 다니까... 나도 축 처진 할머니 가슴보단 엄마가슴이 매끄럽고 더 좋아, 뭐!
아빠는 잠들어 있는 엄마의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는, 깨끗한 새 옷도 입혀줍니다. 가만! 오늘 할머니가 입은 거랑 똑같은, 새하얀 한복입니다. 엄마가 하얀 한복을 입고 있으니까, 하얗게 나풀거리는 한복을 입고있는 동화책 속의 하늘나라 선녀님처럼 너무너무 예쁩니다.
이렇게 예쁜 옷인 줄 알았다면, 할머니가 그냥 입으라고 그럴 때 암말말고 입을 걸...
옷을 다 입힌 아빠는 엄마의 머리를 빗겨주었습니다. 얌전히 누워있는 엄마는 정말 예쁩니다. 아빠도 엄마의 예쁜 모습이 좋은지 슬며시 웃으며 엄마 손을 꼭 잡아줍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올려줍니다. 아빠가 닦아주고 옷 입혀 주고 그러는 게 좋아선지, 엄마는 일어날 생각이 없나봅니다.
아빠는 꼼짝 않고 누워있는 엄마의 입을 벌리더니 뭔가를 먹입니다. 이제 보니 맛난 거 아빠랑 엄마랑 둘이서만 먹으려고! 치, 치사한 아빱니다. 아빠는 나무숟가락으로 뭔가를 떠서 자기는 먹지 않고 엄마만 먹여줍니다. 아빠는 엄마만 좋아합니다.
뭘 먹나 자세히 보니 세상에... 아빠가 엄마에게 먹이는 건 생쌀입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익지도 않은 생쌀을 먹으라니... 집에 밥도 많은데... 게다가 동전까지 먹이려고 합니다. 병균도 많고, 목에 걸리면 큰일나기 때문에, 동전이나 단추 같은 건 입에 넣으면 안된다고 엄마가 그랬습니다. 삼키지 않고 물고만 있는걸 보니 엄마도 싫은가 봅니다.
그런데도 아빠는 억지로 엄마 입에 동전을 쑤셔 넣고 있습니다. 아빠가 미쳤나봅니다. 아니면 그딴 걸 엄마한테 먹으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빨리 아빠를 말려야 합니다.
화가 난 나는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열고는 아빠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빠? 먹지도 못 하는걸 왜 자꾸 엄마더러 먹으라구 그래? 동전이나 쌀을 어떻게 먹어? 씨, 아빠 바보야? 엄마가 싫다고 그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