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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영미야! 어디 갔다 이제오누! 할미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어? 난, 또... 난, 또..."
아플 정도로 꼭 끌어안은 할머니의 어깨가 아까 잡았던 물고기같이 바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이런 할머니 모습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차라리 할머니한테 맞는 것이 좋겠습니다.
"할, 할머니!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다니까! 그러니까 울지마!"
"오냐, 그래! 이 할미가 노망이 났나보다. 이렇게 이쁜 영미를 두고... 흑..."
"왜 울어! 응? 할머니... 울지마... 울지...우왕..."
할머니와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울었습니다. 앞집 아줌마도 뒷집 아저씨도 옆집 할머니도 울었습니다. 앞집 아줌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울고, 뒷집 아저씨는 뒤돌아서 울고, 옆집 할머니는 [에구, 불쌍한 것! 저 철없는 걸 어쩌누!] 하면서 울었습니다. 나야 이유도 모르고 할머니가 우니까 그냥 슬퍼져서 따라 울었답니다.
너무 울어서 눈이 시큰거리고 목이 따끔거립니다. 그제 서야 할머니도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주름진 얼굴에서 눈만 팽팽해진 할머니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푸 푸 풋... 할머니 눈 봐! 웃겨 죽겠다! 푸 하하하하... "
"야!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 영미 큰일났다. 히히~"
또 고약한 막내삼촌입니다. 언제 왔는지 빵공장에 다니는 셋째삼촌이 막내삼촌 뒤통수를 딱 소리가 나게 쥐어박았습니다.
"우이 씨... 형, 왜그래?"
"야, 임마! 니가 어린애야? 지금 농담할 때야? 에라... 임마! 분위기 파악 좀 해라"
"둘 다 그만해! 어머니도 그만 우세요"
얼마 전에 결혼한 둘째삼촌 입니다.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인 둘째삼촌이 나는 무섭습니다. 잘못한 것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삼촌이 왔는 줄 알았으면 일찍 돌아왔을 겁니다.
이제, 어떡하지?
"영미야! 일찍일찍 다녀야지! 할머니가 걱정 많이 하셨어. 어디 갔었니? 저녁은 먹었구?"
"응, 방앗간에서 놀다가..."
아, 방앗간 아궁이에서 구두 말리다가 리본이 녹아버렸는데... 들키면 큰일입니다. 얼른 숨겨야 하는데... 저녁놀 때문에 마당에 있는 모든 게 온통 빨갛게 보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휴~ 구두가 빨간색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참, 할머니 이거!"
할머니에게 들고있던 깜장비닐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누?"
"물고기! 내가 잡은 물고기야! 방앗간에서 구웠어. 엄마, 물고기 엄청 좋아하는데! 참, 엄마는?"
그러고 보니 어제 밤늦게 왔다는 엄마 얼굴을 여태껏 보질 못했습니다. 거의 반년동안 얼굴한번 보지 못한 엄마입니다. 갑자기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어집니다.
"엄마는? 엄마 어딨어? 응?"
"사랑방에... 영미야 나중에... 할미랑... 만나러 가자! 알겄지?"
"어디? 사랑방에? 엄마, 엄마~ 나 왔어~"
"영미야! 할머니 말씀 들어! 아빠가 좀 있다가 부를꺼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때..."
바로 코앞에 엄마가 있는데, 아빠가 부를 때까지 기다라니... 살금살금 사랑채로 가려는데, 눈치 빠른 둘째삼촌이 막아섭니다. 그러자 셋째삼촌이 나를 번쩍 안아들었답니다.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동네 장사라고 소문난 삼촌의 힘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제발 놔달라고 빌기도 하고 애교도 부렸지만 소용없습니다.
"놔! 놔! 안 그럼 꽉 물을꺼야? 엄마 따라 갈 꺼야! 미워! 다, 미워! 우왕~"
진짜 이상합니다. 왜 엄마랑 만나지 못하게 하는지... 밉습니다. 둘째삼촌도 셋째삼촌도 할머니도 모두모두 미워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