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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워진 붕어를 뜯던 현아가 말했습니다.
"방앗간 할아버지, 귀신얼굴이라서 무서웠거든? 근데 굉장히 좋은 할아버지 같어, 그치?"
"내가 그랬잖어. 방앗간 할아버지 하나도 안 무섭다구!"
"응, 나도 첨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좋아. 좀 이상한 할아버지 같지만... 날 보고 정화라고 그러면서 막 이상한 소릴 하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방앗간 할아버지 굉장히 불쌍한 사람이라는 구만. 방앗간 할아버지한테는 서울 사는 외아들하구 우리또래인 손녀가 있었거든. 정화라고 귀엽구 착한 애였는데...
재작년 추석날, 아들내외랑 정화가 할아버지 집으로 차례를 지내려고 왔었어. 추석 다음날 서울로 돌아가려구 했는데, 정화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떨어지기 싫다고 같이 가자구 졸랐나봐. 그래서 같이 서울루 가다가 그만 차 사고가 난 거여.
저기 화령고개 있지? 난 거기만 지나가면 멀미가 다 나더라. 엄청 구불구불하구 험하잖어. 그 고개를 넘어가는데, 갑자기 큰 트럭이 중앙선 넘어 뛰어드는 바람에 운전하던 아들이 핸들을 옆으로 틀었는데, 차가 산비탈로 굴렀다는 구만.
아들내외랑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죽구 손녀랑 할아버지만 간신히 구출됐는데, 손녀두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에 죽어 버렸다나 봐. 할아버지 얼굴도 그 사고 때 유리파편이 얼굴에 박혀서 괴물처럼 변한 거구...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여. 한동안 미친 노인네처럼 우리 집에 와서 맨날 술만 마시구, 울면서 지냈다니까... 방앗간 할아버지 불쌍하다구 엄마가 막걸리도 그냥 공짜루 줘. 이제 방앗간 할아버지한텐 아무두 없구먼... 자식도 없구, 손녀두 없구...
그래서 정화랑 닮은 여자애만 보면 정화라구 한다니까"
"방앗간 할아버지 너무 불쌍허다"
"그럼, 지금 할아버지 혼자 살아?"
"응. 그래서 할아버진 애들 엄청 좋아혀. 나 한테두 잘 해주구. 영미야! 너두 가끔 놀러와. 할아버지가 정화 닮았다구 좋아 허니까..."
"그래, 알았어"
"나두. 나두, 같이 올려"
"그럼, 우리 셋이서 삼총사 할까? 방앗간이 우리 비밀아지트다, 알겄지?"
"응, 알았어"
"다른 사람한텐 절대 비밀이다? 하늘땅별땅 맹세허지?"
"그래, 그래! 하늘땅별땅 맹세해!"
"나두, 나두"
"헤헤헷, 헤헤헷, ..."
너무너무 신납니다. 이제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생겼습니다. 우리 삼총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맹세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성만이가 주문이라며 이상한 말을 중얼거립니다. 괴상한 주문을 줄줄줄 노래부르듯이 외우는 성만이는 참 똑똑한 것 같습니다. 현아와 나는 주문을 몰라서 그냥 잠자코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성만이가 중얼거린 주문은 [반야심경]이었습니다. 성만이 그 허풍쟁이가 현아랑 나를 또 속여먹은 겁니다.
나쁜 성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