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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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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BY 매미 2001-09-17


-10-


곤죽이 되어버린 물고기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방울이 하얗게 변한 물고기 눈알 속으로 똑똑 떨어집니다. 이 눈물이 안약이라면 물고기 눈동자가 다시 까매지지 않을까?

"저런, 이리 줘봐라! 할애비가 깨끗이 씻어서 맛있게 구워주마. 이놈들도 생명인데 이렇게 버리면 불쌍 하잖누. 옷도 많이 젖은 것 같은데 저 아궁이에 가서 말리고 있거라."

방앗간 할아버지는 버려진 물고기를 주워서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앗간에는 큰 아궁이가 있었고, 아궁이 속에서는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젖은 옷과 신발을 몽땅 벗어든 알몸뚱이로, 아궁이 앞에 옹기종기 앉아서 젖은 옷가지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구두를 양손에 들고 앞뒤로 뒤집어가며 말리던 나는, 빨리 말리고 싶은 욕심에 아궁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불길이 얼마나 센지 온몸이 후끈합니다.

아, 따뜻하다!

"야, 이게 무슨 냄새여?"

"영미야, 니 신발?

재빨리 구두를 끌어당겼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빨간 구두에 달린 리본 한쪽이 쭈글쭈글 녹아버렸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신은 구둔데, 입학식 날 신을 구둔데, 엄마가 사준 새 구둔데... 너무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할머니한테 혼날걸 생각하니 앞이 깜깜합니다. 아침 일로 화가 많이 나 있을 텐데, 구두까지 망가트렸으니 회초리로 맞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잉, 내 구두! 어떡해..."

"얘들아! 물고기 왔다. 조심해서 구워먹거라. 이 떡도 같이 먹구"

방앗간 할아버지가 양손에 접시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한 접시는 비늘을 벗기고 깨끗이 손질해서 싸리나무가지를 꽂은 물고기가 담겨있고, 다른 한 접시는 막 버무린 말랑말랑한 인절미가 수북히 담겨있었습니다. 엄청나가 배고팠던 우리들은 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 나도 구두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신 없이 먹어댔습니다. 따끈따끈한 인절미는 정말로 꿀맛이었습니다.

"이놈들아, 채할라! 동치미라두 마시면서 천천히 먹거라"

"예, 고맙습니다"

"너무 맛있다"

"꿀맛이여, 꿀맛!"

인절미 한 접시를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쓸어버리고 나니, 배가 좀 부른 듯 합니다. 배가 차고 나니까 마음도 느긋해집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궁이 가까이 가지 말구 조심해서 놀거라! 알겄지?"

"예~"

방앗간 할아버지가 돌아가자 우리들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집어들고는 굽기 시작했습니다. 불길이 닿자 내 손에 들린 물고기 꼬기가 움찔합니다.

"이 물고기 살았나봐! 움직였어"

"바보야! 배를 갈랐는데, 어찌 사냐?"

"진짜야! 꼬리를 움직였다니까!"

"그건, 니 손이 움직여서 그런거구만"

"그런가..."

성만이가 딱 잘라서 말하니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나도 압니다. 물고기는 내가 들고 있을 때부터 죽었으니까. 그럼 왜 배 갈라진 물고기가 살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냥...

살갗이 타 들어가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검게 그을려진 살갗이 탁! 탁! 갈라지며 물고기는 자신의 뽀얀 속살을 내보입니다. 꼬리지느러미, 등지느러미, 가슴지느러미가 다 타버리고 몸뚱이만 남은 길쭉한 살덩이는 더 이상 물고기로 보이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