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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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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매미 2001-09-17


-9-


"괜찮어. 좋은 할아버지여!"

성만이는 괜찮다고 하지만 현아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말합니다.

"그치만 난 너무 무서운걸"

"야, 그럼 넌 여기 있어라? 영미야! 우리끼리 가자"

"아, 아냐. 나도 갈 거구만! 같이 가!"

이렇게 해서 우리 셋은 방앗간으로 향했습니다.

성만이네 집에서 뒷길로 돌아서자, 양철지붕이 햇빛에 반짝반짝하는 방앗간 건물이 보입니다. 주저하는 현아를 끌면서 방앗간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 왔시유!"

"또 물괴기 꿔 먹으러 왔구나, 요놈!"

안쪽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덩치가 크고 수염이 덥수룩한 방앗간 할아버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 쪽으로 와서는 성만이 머리에 쾅 소리가 나도록 꿀밤을 먹입니다. 현아 말대로 진짜 무서운 할아버지입니다. 혹시 나도 때릴지 몰라!

성만이는 맞고서도 뭐가 좋은지 머리를 문지르며 헤헤거립니다.

"헤헤, 오늘은 친구들도 데려왔어유"

"여자친구? 요놈 재주 좋구만? 허허허!"

"아, 아, 안녕하세요. 영미입니다"

"허허, 네가 청주댁 손녀 영미구나! 이 할애비랑 몇 번 봤었지?"

하면서 할아버지는 내 코앞에 웃는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습니다. 그 순간 터질 것 같은 비명을 꾹 참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방앗간 할아버지 얼굴은 얼기설기 칼에 베인 것 같은 자국과 꿰맨 흉터가 빼곡해서 성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본적은 없지만 귀신이나 도깨비 딱 그 얼굴 같습니다.

현아가 방앗간 할아버지를 왜 무서워하는지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손까지 잡습니다.

"우리 손녀가 살았다면 너만했을 텐데... 참, 많이 닮았구나! 많이 닮았어!"

방앗간 할아버지는 모를 소리만 중얼거리더니, 나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이 할아버지 미친 노인네 아닐까? 놀란 나는 도망치고만 싶었습니다. 아무리 몸을 틀어도 엉덩이를 한 뼘 정도 뒤로 빼는 것이 고작입니다.

"정화야! 정화야! 왜 이제 왔누... 왜!"

"저, 할, 할아버지. 나 나는 영미인..."

내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성만이가 나를 쿡 찌릅니다. 고개만 살짝 돌리고 쳐다보니 성만이가 가만있으라는 듯이 손을 젓고 있습니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습니다.

가만히 안겨 있자니 처음에는 답답하기만 했는데, 조금 지나자 할아버지 품이 좋아집니다. 오들오들 떨리는 몸에 폭신한 솜이불을 두른 것 같이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다른 사람을 안을 때 자신의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은, 진짜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이 할아버지, 정말 좋은 사람 같습니다.

이젠 방앗간 할아버지가 무섭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성만이가 할아버지를 흔들며 부르고 난 뒤에야 나는 간신히 할아버지의 품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드는 건 ?告?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미안하다, 영미야! 우리 정화랑 많이 닮아서..."

"내 말이 맞지유? 영미 이쁘지유?"

"그래, 맞다. 너무 이쁘구먼!"

"그런데, 그런데, 물고기가... 죽었어!"

"으, 드러워!"

현아는 물고기를 버려 버리고는 손바닥을 옷에다 문지릅니다.

"에이,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씨, 못 먹게 됐잖어?"

성만이는 애써 잡은 물고기가 아까운 모양입니다.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납니다. 물고기가, 물고기들이 하얀 눈알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안을 때 자신의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란 엄마 말도 반은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가 따듯한 사람이 되라며 잡아주던 내 손의 온기가 물고기들을 죽게 만들었으니까...

따뜻한 온기가 물고기들은 싫었나봅니다. 물고기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