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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한껏 좋아진 나는 밖으로 나오면서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옷도 맘에 들고, 머리도 맘에 들어. 할머니, 할머니, 나봐라. 헤헤"
아까 전 할머니에게 신경질 부린 것이 마음에 걸려서, 큰소리로 웃었습니다. 하얀 플라스틱 접시에 돼지머리 누른고기를 담아 든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옵니다.
"강아지 기분 풀렸누?"
"헤헤, 할머니 미안!"
"괜찮다. 배고프지? 이거 먹거라"
"야, 맛있겠다"
손가락으로 몇 점 집어먹었습니다. 차갑지만 꿀맛입니다. 윗집 사는 친구 현아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꺼 같은데... 사실은 내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거랍니다.
현아네 아버지는 마을 이장님입니다. 현아네 집에는 전화기도 있고, 노랑머리 마름인형도 세 개나 있습니다. 또 우리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빨간 벽돌 이층 양옥집도 현아네 집입니다. 현아네는 마을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우리 마을 제일의 부자입니다.
저번에 놀러갔을 때 현아와 인형놀이를 했었습니다. 나한텐 종이인형밖에 없는데, 현아는 마름인형으로 놀이를 하자고 했습니다. 내가 마름인형 하나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현아는 빌려줄 듯 빌려줄 듯 하더니 끝내는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치사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 일이 내내 속상했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면 현아도 부러워하겠지? 혹시 구두한번만 신어보자고 해도 절대로 빌려주지 않을 겁니다. 현아도 인형 빌려주지 않았으니까, 쌤쌤인 셈입니다.
"할머니, 고기 싸 줘. 현아 갖다 줄려구. 응?"
"오늘은 집에 있어라. 나가 놀지 말구"
"왜? 왜?"
"왜냐면, 특별한 날이니까"
"나도 알아, 잔칫날. 근데 놀 사람이 없잖아. 할머니도 바쁘구. 나 심심해, 할머니"
"글세, 나가지 말라면 나가지 말어. 에구, 속 없기는..."
갑자기 할머니가 버럭 화를 냅니다. 방해되니까 나가 놀라고 떠밀 때는 언제고 지금은 집에 가만히 있으라니, 어른들은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그래도 내가 누굽니까? 할머니가 부엌에 들어가는걸 보고는 접시를 들고 냅다 대문 밖으로 뛰었습니다.
"얘, 영미야! 아이구 영미 할머니! 영미가 나가네!"
"영미야! 어딜 가누! 이놈의 기집애, 들어오기만 해봐라. 얘! 영미야... 영미야..."
날 부르는 할머니 목소리가 마을을 울립니다. 목덜미를 덥석 쥐어 잡힐 것 같아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데도 쉬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목소리는 한번도 들어 본적 없는 굉장히 성난 목소리였습니다. 잡히면 엄청 맞을 꺼 같아 겁났기 때문에 현아네 집 앞까지 정신 없이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