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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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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lovlywon 2001-09-14

처음 아이를 가지자고 한 건 남자쪽이었다.
"우리도 우리의 살과 피를 누군가에게 나누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장기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우습게도 장난처럼 헌혈을 의미하는 것도 아님을 여자는 알고 있었기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여자가 뜸을 들인건 남자가 결혼하자고, 만나달라고 할때부터이니 제법 역사가 깊기도 했다.
여자는 자신이 없었다. 단지 누군가의 온전한 아내가 된다는 일이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이제 남자는 여자에게 온전한 엄마의 자리를 주고 싶어했다. 처음 그들의 분신이 그렇게 허망하게 스러져갈때 남자는 한동이의 피를 쏟아내어 밀가루를 뿌려댄 것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보다도 더 하얀 낯빛을 해가지고 말했다. '미안해...미안해...' 그는 온갖 형용어를 동원하여 여자를 위로하려 애썼고 여자는 그런 남자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없는 일은 애초에 시작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동물처럼 감각이 살아있는 여자라는 생물체는 본능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타고난 감각이 있는 법이었다. 남자를 만나지도 말아야했고 아이를 가지지도 말아야했다. 아니 이세상에 태어나지도 말아야했다. 거부되어진 생명체는 그자리에서 자멸해야만 했다. 여자는 자신이 덜어내어 주려던 생명들을 거부했다. 그것은 여자의 엄마가 여자에게 그랬던 것과 같았다. 여자의 엄마가 미혼모였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미혼모의 아이가 대부분 그렇듯이 여자는 시설에서 자라났다.
그것은 세상에 버려진 것과 같은 것이다. 타인들의 삶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 속을 가만히 엿보는 일조차 허락되지 못하는 것이 시설수용민의 운명이라고 한방을 쓰던 친구가 그랬었다. 그 친구는 외국인과 결혼하여 이 버림받은 땅을 떠났다. 외국으로 입양되지 않은 것을 한때 다행스러워 한 적도 있었던 친구였다.

되먹지 못한 육신...여자의 엄마는 여자가 열 일곱이 되던 해에 여자를 찾아왔다. 촛점이 흐려진 채로 여자를 오랫동안 찾았다며 두손을 내미는 데 여자는 그 손이 그 어떤 물체보다도 낯설었다. '엄마라니...' 그것은 스스로 폄하하듯 되먹지 못한 육신의 일부였다. 여자의 엄마는 불구였다. 육체의 병이 깊으면 정신의 병도 동반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이고 아니고를 떠나도 어쩔수가 없다. 여자의 엄마라는 사람은 단 한번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평생을 어긋나 살아버린 인생조차도 불구였던 되먹지 못한 삶이었다. 여자가 남자래도 그 육신과는 함께 눕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시설을 도망쳐 나온 것은 오로지 그 육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까닭이었다. 그 비릿한 생선내음속의 알콜로부터.

남자는 짐을 꾸렸다. 말 없이 흔들리는 그의 어깨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를 짐작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동안 등지고 그렇게 앉아있던 남자가 담배를 꺼냈다. 둘째 아이가 여자의 자궁을 흔들어 놓고 사라진 후 끊었던 것이었다. 남자가 아이를 얼마나 바라는지에 대한 증거였다. 금연을 한다는 것. 그는 둘째 아이를 잃고서 한동안 여자와의 잠자리를 거부했었다.그 어떤 이유도 없고 해결책도 없는 여자의 유산 역시 육체의 병이 만들어낸 정신의 피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