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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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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lovlywon 2001-09-09

아직도 어두운 방안이 낯설기만 하다.
어머니가 그렇게 나가고 여자는 이십여분을 그렇게 다리를 웅숭그려 모은 채 앉아 있었다. 비행기 고도가 높아졌을 때의 귀울림 현상처럼 가슴 바닥 저 안쪽까지 먹먹해질때 여자가 곧잘 취하곤 하던 자세였다. 야윈 두 팔은 이제 한줌도 안되는 발목을 잡고 앉아 있기가 거북해졌다. 큰소리를 내면서 닫혔던 문을 어둠속에서 응시하고 있자니 원래부터 어두웠던 것인지 아님 그러고 있으면서 서서히 어둠이 자락을 드리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가슴이 살아있다는 것은 생명을 잉태한 여자가 느끼는 가장 큰 축복이었다.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태동을 느끼면 여자의 자궁은 흔들리고 말았고 그것은 곧 여자를 죽이는 일이기도 했다. 여자는 아직 심장도 뛰고 손발도 움직일 수 있었지만 벌써 세번이나 죽었다. 세번 살고 세번 죽었으니 이미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뱃속의 음식물들을 토해내면서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사람인양 가슴 설레여 했고 심한 어지럼증에 시달리면서도 여자는 행복했었다. 마른 가지에 물을 부어 되살리는 창조의 작업이었고 그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생명을 이태하고 생산해내는 그 자체의 일로만 보면 여자는 신과 동격이어야 했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죽은 가슴과 죽은 자궁을 살리는 것은 여자에게는 형벌이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습관성 유산이라는 말은 여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습관일리가 없다. 제 새끼를, 제 살과 피를 덜어내어 만든 분신을 버려내는 것을 습관삼는 암컷은 이세상에 없다. 여자도 그랬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적어도 잘못 빚어진 고깃덩어리만은 아니라고...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어머니가 다녀간 직후였다.
몇달만에 까칠해진 얼굴로 여자를 다시 찾은 건 지난번처럼 두고간 옷가지들을 챙기러 들어온 까닭이었다.
"깨질 가정은 위기가 자꾸 닥쳐줘야해... 잘못 된 육신에 생명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되먹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난 육신이라니..."
여자의 자조적인 말투에도 남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건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감싸주기 위해서 온갖 미사여구로 위로해주던건 오히려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