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주앉은 상미의 거므스레한 눈그늘을 쳐다보았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스물한살의 봄은, 상미의 얼굴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침침하고 지린 얼룩이 곳곳에 상흔처럼 널려있는 호프집은 상미의 마음의 봄조차 앗아가 짙은 그늘을 만들었을 것이다.
상미의 그런 얼굴을 보며 나의 해맑은 행복이 죄스러웠던 적은 불과 얼마전이 맞았던걸까?
오늘 이렇게 마주앉은 우리 둘은, 이 호프집이 시작이였고 끝을 주었다.
화려하게 프린트된 비닐의 탁자 덮개의 무늬를 내려다 보며
나는 상미가 두번 되묻는 일이 없도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한다.
"이제 끝이야. 우린 이미 끝난거야"
탁자의 꽃무늬를 손으로 따라 그리며, 혼자 있을때 그토록 섧던 두려움이 상미앞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상미야, 나 어디로 가지?"
또 다른 방식의 자리를 탐색해야 한다는 것도 벼랑끝에 내몰린 자의 입에서 나오는 아이러니한 이중성에 오히려 마음은 헛헛해진다.
아무말 없이 나만 바라보던 상미는 그제서야 그간의 둘 사이가 포기가 되는듯, 걸진 원망과 욕설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친구가 받은 배신을 떠나서 상미는 우리의 이런 원인을 헤집어서 남자 모두를 통털어 갖은 야유를 퍼붇는다.
그럴 힘조차 이미 석달간 소진시켜 버린 나한테는 상미의 욕설은 먼, 남의일처럼 아득히 귓전에서 왕왕거리는 소음으로 들린다.
"그새끼 ,주제에 꼴깝을 떨었군"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상미의 포악은 끝을 맺는듯한 종결의 말로 우리는 이제 다시는 이 일로 인한 되새김은 없었으면 하는 희망도 언뜻 비추인것을 느꼈다.
태원씨의 흉하게 얽은 얼굴과 나의 키와 비슷한 짜리한 몸도 상미는 잊지않고 저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 모두 상미의 일이었던듯, 울분을 토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정말로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 가당찮은 생각도 가진다.
상미의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눈그늘이 점차 보이지 않게 되자 문득, 습관처럼 천천히 일어나 컴컴해진 호프집의 벽면에 다가가 전등 스윗치를 올렸다.
어두운 사물은 갑자기 소스라친다.
아니, 밝은것이 두려운 내 어두움이 놀라서 움찔거렸겠지.
"상미야, 들어가서 마저 준비해. 나 혼자 앉아서 생각좀 정리해볼께"
너무 친구를 오래 붙잡고 있는것도 상미에게나 나나, 현재로서는 도움될 것이 없는 정신이 들었다.
상미는 주방에 들어가고, 달그락거리며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낯설지 않게 들리는 저녁의 어둠내린 거리를 내다보았다.
행인들의 걸음은 바삐 제갈길로 움직이고,
나는 갈 길을 잃은채로, 물끄러미 그들밖으로 튕겨져 나와 턱을 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