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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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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아나스타샤 2001-08-25

호프집으로 가는 길은 이제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턱을 밟아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꺽어서 열발자국.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서 오십발자국.
두번째 오른쪽 골목의 발자국 수는 굳이 입속으로 세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위의 소음으로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골목안의 풍경은 머리속에 지도로 새겨져 있다.
오늘의 발걸음은 감정에 ?겨서 인지 주위의 소음에 신경쓰며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기가 안될 정도로 마음은 재촉을 한다.
"아닐거야......, 그건 아닐거야......"
입속으로 발자국을 세는것은 어느새 까마득한 옛일이 된듯, 혼자 중얼거리며 발걸음만 재촉한다.
지난 이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길을 걸을때, 이렇듯 초조한 기분으로 걸었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불과 며칠전까지 되풀이 되던 일상들이 이제는 회색 그림자 같은 것으로 덮여져 머리속이 멍한채로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눈앞에 값싼 썬팅으로 조잡하게 인테리어 되어 있는 호프집의 문이 보이자, 나는 약간의 안도감 섞인 한숨이 쉬어진다.
해거름이 어슴프레한 지금의 시간이면, 시골에서 같이 올라온 상미가 저녁장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홀홀단신 서울에 버려진 외톨이는 아닌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호프집 문을 허둥대며 열고 들어섰다.
여느때처럼 주방쪽에 눈길을 돌리는 대신, 어수선한 홀을 재빠른 시선으로 훑었다.
역시 없구나......
있을거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재촉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는 마음이나, 달리 말 섞을 곳이 없는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방문이었다.
인기척 소리에 상미가 홀로 통하는 쪽문을 열며 늘 그런것처럼 심드렁하게 표정의 변화없이 반긴다
"왔니?"
상미와 마주설 힘도 없이 나는 가까운 의자를 금속성나게 끌어당기며 털썩 앉아버린다.
"싸웠어?"
입을 떼기도 전에 상미는 넘겨집는다.
나는 이제 막 눈에 익은 홀의 침침함에 다시금 고개를 돌려 훑어본다. 아까의 훑음에 실수라도 있었던양 천천히......
"오늘 이곳에 들르지 않았는데?"
나의 고개짓 만으로도 상미는 벌써 해답을 찾은듯 미리 묻기도 전에 답을 해준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오랫동안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은듯한 갈라지는 음성으로 입을 뗀다.
"전화도?......"
"응, 전화도 없었어. 왜 그러는거야?"
"태원씨가 어제부터 연락이 안돼. 찾을 수가 없어."
상미와 나의 눈길이 잠깐 사이에 부딪힌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힌 짧은 찰나에 두사람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기라도 한양, 서둘러 다른곳을 찾아 시선을 꽂는다. 어려서부터 같이 크고, 같이 자라서 같은 교복의 학교를 다니던
나와 상미는 입을 빌어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쯤은 꿰뚫을만한 시간들이 함께 그들을 엮어주었었다.
그제서야 나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나온다.
"나 불안해"
무너지는 나의 창백한 얼굴색을 보며 상미는 체념섞인 눈빛으로 그 말을 받는다.
"올것이 온거지?"
상미도 채 준비를 끝내지 못한 주방일은 제치고 나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