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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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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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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BY 안개 2001-08-23

"형님, 가서 아침드시고 하십시다.
야들아, 가서 밥먹고 하자. 벌써 얼굴이 시뻘겋네. 일하는게 쉽지 않지?."
이장이 조카에게 말하면서 복수아버지의 팔에서 담뱃단을 걷어다 자신의 팔에 얹었다. 갑자기 가벼워진 팔이 저려 몇번 앞뒤로 탁탁 털어 보지만 시큰거리긴 여전하다.
이장이 경운기에 시동을 걸자 아이들이 멀리뛰기 할때 하는 도움닫기로 사뿐히 경운기에 오른다. 이장 옆, 경운기 앞자리에 앉은 복수아버지의 몸이 반동으로 휘청하며 어지럽다.
"담배 밟지 마라. 그러면 오늘일 해도 도장 안찍어 준다."
이장이 반 협박을 하자 아이들이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게 우습다.
이슬먹은 담뱃진에 아침부터 뜨거운 해가 비치자 이내 꾸덕꾸덕 해진다.
이장네 담배밭은 마을 오른쪽 끝 산자락에 붙어있고, 집은 왼쪽끝에 있어 이장네를 가려면 마을을 한바퀴 돌게 된다. 마을 중간에 마을회관이 있고 그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복수네 집은 마을 회관 앞이다.
"잠깐 세워봐.
먼저가게. 내 소죽 좀 주고 금방 따라감세."
자신의 집뒤 회관에 경운기를 세운다. 소죽같은것은 신경도 안쓰는 마누라 때문에 남의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집에 들락거려야 한다.
집으로 와보니 마루에 상도 펴지 않은채 주욱 퍼질러 앉아 마누라와 세 딸들이 밥을 먹고 있다.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게에다 감자를 까 얹은 밥이다.
아직 네살밖에 안된 막내도 졸아서 국물도 없는 된장에다 밥을 비벼 먹고 있다.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다가 왔는데도 눈길한번 건네지 않는다.
썰어놓은 옥수수 대궁에다가 당가루를 한바가지 섞어 소 여물을 주다가, 소한테도 쏟는 정성을 자식한테도 못쏟는 마누라에게 부아가 나 여물주던 바가지를 획 집어던진다.
"남들은 꼭두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하면서도 얘들 도시락까지챙기고 집안일까지 다 하는데, 자넨 들에 나가 일을 하나 그렇다고 집구석을 반듯하게 치우길 하나, 문밖만 나서면 지천으로 반찬거린데 아침 밥상이 이게 뭐야. 밥상은 어따 두고 그지 새끼들마냥 퍼질러 앉아서 밥을 먹어. 이제 네살박이 갓난쟁이가 그 짜 빠진 된장을 소화나 시키것어? 어째 꼭 밥해먹는것 까지 남정네가 잔소리를 하게 하나 이사람아."
처음엔 큰소리가 이젠 숫제 애원이다. 그래도 듣기 싫은 소리라고 마누라의 입이 퉁하고 나온다.
딸들이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밥숟가락을 놓더니 마루밑에 이리 저리 굴러다니던 신발을 꿰차고 아이들소리가 나는 집뒤 회관마당으로 뛰어간다. 마누라가 눈치를 보며 애들이 먹다 남은 밥을 한데 모으더니 소 여물위에 쏟는다.
"설거지 해놓고 빨리 따라와. 동네 사람들 왔다갔다 하는데 마루라도 대강 훔치고 쯧쯧..."혀를 차며 이장네로 나선다.
'저 여편네를 믿고 자식을 보았으니.. 이러니 내가 오래 살아야지.' 한숨을 쉰다.
마누라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심지어는 자식들 한테도 그닥 특별나지가 못하다. 그저 제한몸 편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그나마 사람대접을 해주는건 복수아버지를 봐서라고 동네사람들이 말한다.
복수아버지한테 오기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시집이었지만 딸자식 모자란걸 그저 사람 시늉시켜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 집에서는 얼른 혼사를 시켰다 한다. 원체 배운것이 없어 시부모의 시집살이가 대단했다한다.
하지만 복수아버지 생각에는 누구든지 이여자 성격을 참아내는건 매우 힘들꺼라고 생각한다. 생전 웃는 낯이라곤 보이지 않는 해자 엄마를 처음엔 두고온 세 아들 생각 때문인줄 알았다.
그러나 가끔 방학이라고 전 남편의 아들들이 찾아와도 특별히 신경을 쓰기는 커녕 귀찮아 하기에, 도리어 복수아버지는 그 어린것들을 제 어미한테서 떼어놓은 자신이 미안해서 그애들한테 하나라도 더 해먹일려고 애를 썼다.
동네 사람들은 그걸보고 속이 없는 사람이라느니 남의 자식 걷어 먹이는게 팔잔가 보다느니 말들을 했다.
물론 복수엄마가 여덟살이던 어린 복수를 남겨 놓고 눈을 감았을 때에도 애처롭고 불쌍해서 친자식 처럼 키웠다.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생각한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의 딸들보다 마음이 더가는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복수도 자신이 친딸인줄 알고 컸을 정도로. ㄱ래서 지금까지 사람들은 해연,해숙,해자의 친아버지를 '복수 아버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