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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포옹 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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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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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안개 2001-08-23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복수엄마와 살던 그때는 밥안먹어도 배부르던 시절이었다.
복수네집이 마을 중간에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딱히 볼일이 없어도 마루에 걸터앉아 물 한바가지라도 마시며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들끓곤 했지만 싫은 내색 한번 않던 복수엄마였다.
몸이 워낙 약해서 들일은 복수아버지가 나서서 막았지만 집안일 하나는 동네에 소문이 날 정도로 야무지게 잘하던 여자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을 하도 반질나게 가꾼덕에 그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도 마루고 마당이고 흠잡을데 없이 깨끗했다.
너무 깔끔해도 재산이 붙지 않는법이라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스게소리로 한마디씩하면, 집안에서 이정도도 못하겠어요,하며 그 새하얀 얼굴로 배시시 웃기만 했다.
음식 솜씨 또한 나무랄데 없어서 반찬한가지로도 밥한그릇은 후딱 해치울 정도고 동네에 큰일이 있을때 간을 맞추는 일은 복수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고 입덧이 조금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물만 먹어도 토하는건 물론이고 얼굴이며 다리까지 부어오르는게 심상치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엄두도 못내고 이웃의원 집에서 용하다는 약을 지어 먹였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서너달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했지만 일곱달째에 기어이 하혈을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팔삭동이는 못살아도 칠삭동이는 산다는 아이에 대한 미련을 갖게하는 얘기들도 들렸다.
뒤늦게야 몇뙤기 안되는 밭까지 팔아 병원에 데려 갔지만 때는 늦어있었다.
워낙에 약한 몸이라 원래부터 아이는 불가능했다 한다.
아이는 이미 죽어있었다. 아들이었다.
뱃속에 죽은 아이는 자라는 아이보다 더 많은 양분을 빼았아 가기 때문에 산모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집에서 아이엄마의 장사라도 치르고 싶다면 빨리 데리고 가라고 그랬다.
반쯤은 빠져나간 무게를 하고 집으로 와서는 그날을 못넘기고 기어이 가고 말았다.
복수를 잘 부탁한다거나 좋은여자 만나 행복하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먼저 가니 미안하다거나 하는 한마디 말조차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삼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