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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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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안개 2001-08-14

지금은 복수아버지가된 김만복이 이장네 밭일을 도맡다시피 한것은 벌써 이십여년이 넘었다. 복수엄마와 만난것도 이장네 덕분이다.
복수엄마는 이장네와 먼 친척뻘이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어려웠던 시절, 이동네 저동네 떠돌며 남의 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며 뜨내기처럼 혼자살던 그때,
농사철에 이동네에 들어와 일을 하다가 복수엄마를 만났다. 사십여 호 옹기종기 모여서 모두가 한식구처럼 의지하며 살던 마을인심이 참으로 편안하고 좋았다.
사방이 산으로 싸여있어 밖에서 보면 그냥 산인줄 아는 마을, 웬지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밖으로 나갈수없게 만드는 아늑한 마을,게다가 복수엄마를 만나고부터는 이동네가 고향같이 느껴졌다.
남편과 사별하고 다섯살된 딸하나를 데리고 겨우 친정 밭 몇뙈기 부치며 살던 복수엄마를 만난건 이장네 담배를 뜯어주기위해 며칠 머물던 어느해 여름이었다.
지금이야 헹거라는 쇠막대기에 담뱃잎을 등끼리 서로 맞대어 나란히 눕혀서 또하나의 쇠막대기를 위에다 대고 한번 꾹 누른후 고리로 걸어주면 되지만,그땐 족히 십미터는 되는 새끼줄에 일일히 두잎씩 꽉꽉 조여가며 담배를 끼워야 했었다.
그걸 들어올리려면 사내도 힘이 드는데 한눈에도 시골 낙네 같지않게 새하얀 얼굴의 몸 약한 복수엄마가 마당에서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일을 하는게 안쓰러워 보였다.
"그냥 끼 놓기나 하소.내 들어줄테니."
보다못해 건넨 첫마디에 얼굴을 발그레하니 붉히는게 보기 좋았다.
혼자사는 조카딸을 항상 안쓰러워 하던 이장 모친이, 성실한 뜨네기 일꾼을 눈여겨 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조금 많고 고향이며 가족,신상에 대해 아는것이 없다는게 당장 마음에 걸리지 않는것은 아니었지만 보아하니 성실하게 일을 잘하고 심성도 모질어 보이진 않으니 과부 베필로는 연분이다 싶었나 보았다.
물론 생전가야 먼저 말문여는 일 한번 없는 복수엄마와, 남의 동네와서 과부 보쌈할 용기는 생전에 틀려먹게 생긴 김만복이가 서로들 알아서 맺을 연분은 아니었다.
여름이 지나 선선해지기 전에 둘사이를 매듭짓기 위해 이장 모친은 며칠이나 일을 만들어 시키곤 했다.
추석전에는 담배 조리까지 다 끝내야 했는데 진득하니 앉아서 색깔별로 맞추고 길이를 재는 담배조리는 남자들 일이 아니다.
담배만 다 뜯어 놓으면 자기 할일 다했다는듯 다른 동네로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사내는 떠나기로 돼있었다.
담배를 다뜯어낸 밭에서 배추를 심기위해 담배밑동을 낫으로 처내는 일을 하고 있을때 복수엄마가 어린 복수를 데리고 새참을 내왔다. 후에 알았지만 이장 모친이 남부끄럽다는 복수엄마의 들을 떠다밀어 시킨일이었다.
평소엔 부끄러워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던 복수엄마가 어색하지만 아무렇지 않은듯 옆에있는 복수의 입에 밥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틈틈히 앞으로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 사내의 물그릇에 물도 따라주고, 반찬위로 올라가는 개미도 털어내고 반찬도 앞으로 밀어주고 하였다.
그러다가 간혹 밥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어색하기는 남자쪽도 마찬가지 였지만 마치 한식구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여자가 한남자를 위해 밥을 하고 빨래를 해주고 일나간 남자를 기다리며 집안일 하는것이, 한남자가 한여자를 위해 밖에나가 돈을 벌어오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할때였다. 자신도 남들처럼 보란듯이 가정이란걸 이루고 살고 싶었다.
몸약하고 애딸린 여자라는것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면 큰 흉이 될것도 없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복수가 딸이었고 복수엄마가 자신의 여자였던 생각이 들었다. 복수도 낯을 세우지 않고 자신을 잘 따랐다.
남들처럼 사모관대쓰고 특별히 격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동네사람 모아놓고 떡과 국수를 대접했다. 복수엄마가 살던 집을 깨끗하게 도배하고 장판도 새로 깔았다. 도와준 이장 모친은 마치 자기딸이 시집가는것 마낭 기쁘다고 눈물을 훔쳤고 평소에 복수엄마가 얻은 인심덕에 동네사람들 모두가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참 재미나게 살았다.
이런것이 행복이구나 싶게 서로를 위하며 살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삼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