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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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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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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dlsdus60 2001-06-13

"야! 오천원도 없어?"
"없어요. 오늘 친구들이랑 돌아다니면서 다 써버렸어욧!"

인호는 가진 돈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돈과 가방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인은 인호의 마음과
달리 사냥해 온 토끼를 어떻게 잡아먹을까 궁리하는 여우처럼 여유로운 웃음까지 지었다.
인호의 심장은 단거리 경주를 하고 난듯이 뛰기 시작하였고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마른침을 삼키며 인호는 생각했다.
가방에 든 것이라고 해봐야 책과 노트 그리고 몇 개의 필기구뿐인데 그냥 두고 골목을 빠져
나가는 것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일 당장 학교에서 다 필요한 것들이고 그 중에는 리포트를 복사하기 위해 친구에게
애써 빌려온 노트가 끼어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나서 마음먹은 대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인호는 여인에게 다가가 애원을 하였다.

"저기요. 나중에 돈 있을 때 오면 안될까요? 오늘은 제가 집에 가서 할 일이 많거든요."
"호호! 이 자식 웃기는 녀석이네. 맨날 데모나 하고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대학생
주제에 무슨 할 일이 많다고..."
"아니에요. 진짜로 리포트 작성해야 돼요."
"놀구 있네. 리포튼지 자포튼지 나는 그런 유식한 말은 못 알아듣겠고 너 지금 얼마 있어?"

여자의 빈정거림에 인호는 화가 치밀어 더 이상 대꾸도 하고 싶지가 않아 입을 다물고
파출소가 어디에 있었나를 머리 속에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거리마다 줄줄이 있던 파출소는 이곳 사창가 근처에서는 보지도 못한 것
같았다.
인호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여인을 쳐다보았다.

"야! 내 말 안 들려, 가진 돈 얼마나 있냐구?"
"토큰밖에 없어요. 지금은..."

인호는 바지 주머니의 속을 꺼내 보이며 손에 잡히는 토큰을 여인에게 보여 주었다.
여인은 김 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인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무엇인가 생각을 한 듯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가방은 왜 뒤져욧!"
"이 자식아, 물품 검사하는 거다. 왜?"

인호는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코웃음을 쳤다.
한참 동안 냄새나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노트를 꺼내 들었다.

"차인호야, 맞어?"
"네 맞아요. 빨리 가방 내놔욧!"
"학교는 좋은데 다니네. 공부는 잘 하냐?"

인호는 여인의 포로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여인은 경찰이나 되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인호의 신상에 관해 이것저것 취조하듯이
물었다.
인호는 이제 자포자기 상태로 여인이 묻는 말에 순순히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말이야. 인호야. 개시도 못했다. 후!~ 너 학생증 맡기면 외상도 해 줄 수가 있다. 그렇게
할래? 너 보아하니 이런 곳 처음 인 것 같은데 다 이것도 인생 경험하는 거야! 학생증 어딪어?"
"학생증요?"
"그래 임마! 이 누나가 너 생각해서 외상 해 주는 거야, 아무나 해 주는 줄 알어? 너 오늘
무지 재수 좋은 날 인줄 알어라!"

인호는 세상에 태어난 지 20여년을 살았지만 이런 여인과 성적인 일로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히고 황당하였다.
인호는 여인의 말대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여인에 대한 호칭을
바꾸어 불렀다.

"누나, 한번만 봐 주세요."
"호호!........"

"인호의 간절한 바램에도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가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따라 들어오라며 가방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인호는 여인을 따라 들어가려다 동작을 멈추었다.
인호는 여인의 행동에 분을 삼키며 자신이 사창가 골목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인호를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사창가 앞에서 서성이는 인호가 못 마땅했는지 이상한 눈빛으로
노려보았고 인호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여인이 들어가 버린 대문 앞에서 인호는 한참을 망설이다 하는 수 없이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반쯤 열려진 낡은 대문을 바라보았다.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학생증이라도 맡기고 가방을 돌려 받고 싶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