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겠지 왜 그렇게 그사람이
널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왜 내가 그렇게
너와 그사람을 연결해 주고 싶어했는지..."
은주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충격이 온몸으로 파고 들었다
"많이 망설였어 은주야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란게 있을까
그리고 나...너에게 가장 친한 친구야
그렇지? 속이고 싶지 않았어
너와 나 사이 비밀같은거 만들고 싶지 않았어"
은주는 망연히 진이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래...너무 내 욕심이었나보다
넌 그냥 오빠같은 맘밖에 안든다구
미안해...은주야. 은미한테 얘기 들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넘 홀가분하다
나 그동안 넘 답답했거든
하지만 진짜 멋진 사람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잊지않고
간직하며 살수 있을까
돌아서면 잊고 마는게 요즘 사람들인데 말야"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머리가 엉망진창인채로
은주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편으론 두사람의 사랑이 애절했고
한편으론 자신이 그녀와 닮았다는것이
넘 화가 났다
<나는 나일 뿐이야. 나는 그녀가 아니라구...>
한동안 은주는 그를 피했다
아니 더 솔직한 맘은 바라볼수 없다는것이
맞았다 도저히 그 눈빛을 받아낼 자신이 없어졌다
"은주 무슨일 있는거니?"
"......"
"뭔가 아주 다른데...무슨일 있어 보여
내가 알면 안되는일? 곤란한 일이면 말안해도 되고"
"나는 은주에요"
"뭐?" 어이없는 눈빛이 되돌아 온다
이해할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
"나...진이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그사람이야기...오빠가 아주 많이 좋아한..."
순간적으로 그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얼굴표정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미안해요 하지만..나...다른사람이고 싶진 않아요
그맘 알지만..나는 나니까..
그러니까 이해해줘요"
"알았어" 차가운 음성을 뒤로한채
그가 멀어져갔다
그후로 절대 눈빛이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종종 여럿이 어울렸지만
은주는 종종 그사람에게 눈길을 던졌지만
어쩐일인지 은미한테만 아주 친절했다
웃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왠지 모르게 은주의 맘 한구석이 아퍼왔다
그사람에게 말을 걸려했다
하지만 벌써 저만치
은미와 걸어가고 있었다
"저어기..."
"무슨일이지?"
은주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너무나 낯선 그의 모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니 그냥..."
"조심해가"
은미의 말이 들려왔다
"난 오빠가 바래다 준다고 해서.."
"어..그랬구나 잘가!"
은주는 뒤에서 슬슬 걸어가
버스정류장에 이르러서
둘이 가버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게 아닌데...
정말 이게 아닌데...
몇대의 차가 지나쳐 갔지만
은주의맘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뭘 그렇게 아주 많이
잘못을 저지른걸까
왜 나만 이렇게 혼자 이래야 하지?>
은주는 맘이 넘 심란했다
은주는 결국 차를 타지 않았다
생각할일들이 머릿속에 넘 많아
서서히 걸음을 띠고 걸어갔다
언제 집에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버렸는지도
아주 많이 꾸지람을 들었는데
전처럼 떨림도 없었다
삶이란게 이렇게 허무했던가
이렇게 외로움 투성이였을까...
은주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알수없는
불안감들이 넘 두려웠다
이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느낌..
그것은 정말 넘 두려웠다
몸서리 칠만큼 깊이를 알수없는 두려움들이
은주를 서서히 죄어오고 있었다
요즘의 그가 자동차 운전을 배운다는것을
진이에게 전해 들었다
진이는 은미에게 들은듯하다
두사람의 만남...
진심으로 축복해야 하는데
어쩐지 은주는 진심으로 그래줄수가 없었다
내안의 어디엔가 이런 못난 감정들이
숨어있었단 말인가...
은주는 자신을 힐책했다
그럼 안되지 잘되라 빌어줘야해..
하지만 그럴수록 까닭모를 감정들이
은주를 옭아메고
그리고 서러운 눈물을 흘리게 했다
드디어 시험날...
은미는 정성스레 포장한 엿이며
찹쌀떡을 건네주었다
은주는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두사람 잘되가나보다"
"그래"
이유를 알리없는 진이가 웃음을 띠고
바라보고 있다
"너두 좋지?"
"뭐가?"
"보기 좋쟎아...이세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거 정말 멋진일 아니니
진짜 축복이쟎아
보고프면 언제든 볼수있고
그리고 그리우면 만나고..."
"그래..."
그래..정말 그렇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지만 은주는 그런느낌들을 느낄수가 없었다
건성으로 진이의 말에 맞장구는 쳐주었지만
뭔가를 잃어버린 허전한 가슴
뻥뚫린듯한 이 외로움...
정말 무엇으로 다시 이전의 나로 되돌릴수 있을까
돌아가는길에
진이랑 은미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은주는 조금 떨어져 걷고 있었다
오늘은 왠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가만히
그렇게 있고만 싶다..
"나 시험보는데 잘보라고 안할건가"
흠칫 놀라 돌아보니 어느사이 그가 곁에 서있다
"잘보세요"
"고마워...그것뿐?"
그럼 대체 뭘 어쩌라구...
"은미가 아까보니 찹쌀떡이랑 엿 주는거 같던데..."
"아..그래"
"붙을거에요 조심해서 잘 하세요"
"고마워~"
짧은 대화가 오간후에 다시 은미가
쪼르르 곁으로 달려왔다
"나 먼저 갈게..다들 잘가...안녕"
은주는 먼저 돌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눈에서 스르르 눈물이 흘렀다
바보...
바보...
정말 난 바보다...
한동안 흐르던 눈물이
흐느낌처럼 그렇게 거세지더니
어깨를 들썩일만큼 커져 버렸다
얼마만에 정말 이렇게 우는것일까
전에 없던일이지만
아니 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지만
은주는 가슴속 한켠이 시원해 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