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와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미팅이야기였다 은주에게도 몇번와서 귀챦게 물어봤지만 딱히 뭐라 해줄이야기도 없어서 은주는 가만히 아이들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였다 진이는 그래도 만남이 이어지는 모양이긴했다 가끔은...나두 아이들처럼 자유로이 맘껏 이사람저사람 만나보고도 싶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근엄하신 표정이 떠올라 은주는 차마 그러질 못했다 자신의 소심함을 종종 원망하기도 했다 왜난 저럴수 없는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어느새 조만치 사그러들곤했다 어려서부터 은주는 한번도 아버지를 아빠라 불러보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 하는 그 흔한 뽀뽀한번조차... 아버지앞에선 무릎을 꿇고 안기 일쑤였구 아버지 말씀이 끝나기 까지 언제나 듣고 있어야 했다 그것이 습관화되어 어느자리에서도 은주는 무릎을 꿇는것이 더 편했다 종종 친구들은 그런 은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문이 무엇이길래 아버진 늘 그렇게 꼿꼿한 양반가의 자손임을 내세우셨다 다소곳하게 항상 여자는 그렇게 참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일까 하지만 답답하긴해도 그것을 벗고픈맘은 있어도 섣불리 은주는 아버지에 대항할 용기가 없었다 스스로가 바보스럽다고 원망하던 날이 몇날몇일이었는지... 엄마는 또 어떤가 이제껏 아버지말이 하늘인듯 그렇게 떠받들고 네/네 하며 살아오신 그런 분이시다 마치 아버지 그늘을 벗어남 큰일날거처럼 엄마는 그렇게 지성으로 아버지를 따르시는 그런 분이셨다 엄마의 영향일까 자연스레 은주도 그렇게 되었다 그게 넘 자연스런거니까 한번도 왜 그래야 하는지 은주는 이유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아주가끔은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싶다는 생각을한다 부질없는일... 그것은 아마 내가 죽어야만 가능할런지도 모른다 나홀로 그런일을 벌인다는것은 은주로선 상상할수도 없는일이였다 그런와중에 진이가 약속이 있는지 콧노래를 부른다 "좋은일 있는가보다" "응..그래 맞아." "좋아하는거니?" "그래" 아주 쉽게 그리고 간단하게 진이는 대답을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일 글쎄 정말 가능한것일까 요즘에 눈에 띄게 활기차고 생기있는 진이의 모습을 만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일 그리고 사랑하게 되는일은 그런것일까... 그렇게 흥분되고 가슴설레는일일까 그리고 더불어 저렇게 생기있고 이뻐보이는것일까... 은주는 부러움반 걱정반으로 진이를 바라보았다 "아주 조금 만났을뿐인데?" "바보...건 느낌이지 횟수가 중요한건 아니야" "느낌?" "그럼 때론 첫눈에 반하기도 하고 그리고 때론 몇번 보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수 있는거지" "그런거니?" "아휴 그래..내친구지만 넌 가끔 참 답답하다. 정말 넌 요즘 보기드문 골동품같아" 진이의 말이 맞다 내가 정말 요즘아이들일까 왠지 그녀와 은주의 사인 작은 벽이 느껴진다 난..난 왜 그럴수 없는거지 "참..넌 왜 안만나니?" "난..." "별로였어?" "아니" "그럼?" 순간적으로 은주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하는것일까 "그냥..." "아버지때문이니?" "......" "언제까지 일건데?" "뭐?"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냐구 니인생을 사는거지 아버지가 니인생을 사는건 아니쟎니" 순간적으로 번개라도 맞은것처럼 은주는 화들짝 놀랐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런일이다 내인생... 아버지인생... 그것이 따로따로란 개념이 내겐 없었다 하지만 진이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아버지와 나의 인생은 언제나 하나였다 아버지의 의지가 곧 내삶이었으니까... 은주는 진이의 손에 이끌려서 함께 나갔다 한편으론 아버지에게 꾸지람 들을 생각에 걱정이 앞섰지만 그런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열심히 억눌렀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리가 그녀에게 알수없는곳에서 ??아났다 진이가 벌써 전화를 한것일까 그쪽도 나란히 상대가 함께나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잘지냈어요?" "네" 앵무새가 말대답하듯 그렇게 은주는 내뱉었다 "지난번에 혼나지 않았어요" "후후..조금요" "무척 엄하신가봐요" "좀 그런편이에요" "좀 그런편이긴 심한거지" 진이의 말에 은주는 눈을 살짝 흘겼다 "얘는~" 그날은 넷이서 함께 그래도 잼있는 시간을 보냈다 잠시 시계로 눈을 돌린 은주는 숨을 삼켰다 "들어가봐야해요?" "네" "그럼 담에 시간내줄수 있나요?" "그건..." "내가 맘에 들지 않는거에요?" "아니요 하지만..." "아주 오래 기다렸어요" "네?" "보고싶어서요 은주씬 날 안보고 싶었나봐요 은주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들어가요 많이 혼나지 말았음 좋겠네요" "네 그럼..." 후다닥 은주는 뛰기 시작했다 제발 이시간까지 아버지가 들어오시지 말았음 좋겠는데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일뿐 현실은 은주의 바램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은주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의 엄한 눈빛과 마주쳤고 이내 기가 죽어 버렸다 "지금이 몇시니?" "죄..죄송해요" "이시간까지 대체 뭐하다 온게야" "......." "아휴 어쩌다 그런건데 그만하세요" 어머니가 편을 들어주셨다 처음이여서 일까 아버진 이내 암말씀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담부턴 늦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