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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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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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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BY noma 2001-05-18

7
[ 너무 힘들어... 요즘 들어 얼마나 까탈을 부리는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트집잡고 오늘은 최악이었어 ]
친구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던 혜원이 갑자기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 왜? ]
[ 그사람 너한테 ... 혹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거 아닐까? ]
[ 너 미쳤니? 그런 소리 하지마 ]
[ 아니야, 요즘 시현씨 여기 자주와 ...근데 웬지 우울해 보이고 외로워보여 . 그게 꼭 너때문인것처럼 느껴진다. ]
[ 나 때문에 화는 나겠지. 골탕먹이려고 일은 시켜 놨지만 이제 지겨워진거 아닐까? ]
[ 예전부터 생각한건데 너, 왜 시현씨한테만은 너그럽지가 못하니? ...친구들이나 다른사람들과의 관계에선 항상 상대방위주이면서 그 사람 앞에서만 양보도 관용도 없이 너 자신만 생각하는거 알아 ? ... 전에 니가 힘들어 하던 부분 말인데 요즘 시현씨 우리가게에서도 여러 여자들과 만나는걸 보면 그의 시선에서 어떤것도 느낄수가 없어. 그건 확실히 알수 있어... 전에 내 남편은 무시하는척하면서 교묘하게 상대방을 관찰하는 눈길로 보는걸 몇번이나 목격했거든. 굉장히 찝찝한 느낌이었어. 흐음∼ 서글퍼진다. 왜 내 옛날 얘기가 나온거니? ]
혜원이 씁쓸하게 웃자 그녀는 웬지 미안해졌다.
[ 나 정운씨한테 청혼 받았어 ]
[ 뭐? ...휴∼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거니. ]
헤원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며 그녀는 처량한 눈길로 술잔을 바라보았다.

아침에 눈을 뜨려는데 눈꺼풀이 도저히 떠지지가 않았다.
온몸이 쑤시고 안아픈데가 없고 열도 있는 듯 했다.
간신히 기다시피해서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 있는 찬물을 들이키자 갑자기 한기가 들어 그녀는 얼른 침대로 들어가 이불을 꼭꼭 여몄다.
다행히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생각을 하자 안심하고 점심때가 다 될 때까지 잠에 취했다.
얼마나 잤을까 요란스런 전화벨 소리에 눈은 떴지만 천장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 다시 눈을 갑고 침대 옆 탁자위를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냈다.
[ 여보세요 ]
[ 나야, 왜 이렇게 늦게 받는거야?... 문제가 생겼어, 지금 좀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
[ 싫어요. 오늘은 일요일이예요....내일 얘기해요 ]
그녀는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 이봐...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
[ 당신이 하도 볶아대서 몸살 났어요. 됐어요? ]
핸드폰을 끊고 밧데리까지 빼버린후 그녀는 이불을 머리위까지 뒤집어 썼다.
다시 얼마후 이번엔 초인종소리까지 지겹게 울려대자 그녀는 엉엉 울고 싶어졌다.
이렇게 몸이 아플땐 정말 너무 서러웠다.
겨우 현관으로 나가 밖을 확인하자 시현이 초조하게 초인종을 또 누르려 하고 있었다.
[ 그만해요. 정말 시끄러워 죽겠어 ]
[ 그럼 빨리 열면 되잖아 ]
그녀가 문을 열자 그가 재빨리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 지금 여기까지 와서 나에게 고쳐내라 아무리 다그쳐도 난 죽어도 못하니까 알아서 해요.]
[ 약은 먹었어 ... 밥은 먹은거야? ]
[ 몰라, 자고 싶어 ]
그녀는 다시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 근데, 이 천 쪼가리들은 다 뭐야, 왜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거야?]
그가 방으로 따라 들어와 그녀가 만들고 잇는 퀼트 조각을 바닥에서 주우며 중얼거리자 그녀는 화가 솟구쳐 벌떡 일어났다.
[ 무식하긴, 내 퀼트조각에 손대지 말고 빨리 가 버려요 ]
그녀가 소리치자 그의 표정이 무안한 듯 의기소침해지는 것 같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천 조각들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방을 나가더니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간줄 알았던 시현이 다시 와 있었다.
[ 안 갔어요? ]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 좀 누그러져 있었다.
[ 뭐 좀 먹고 해열제라도 좀 먹어야지. 열이 많아... 식탁으로 갈래, 아님 이리 가져다 줄까? ]
[ 일어나 볼께요 ]
그녀는 일어나 부엌으로 가는대신 좀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는 순간 자신의 모습이 정말 가관인데에 창피해졌다.
대충 씻고 부은 얼굴을 두 손으로 누르며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는 식탁에 뭔가를 차려놓고 있었다.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는 것은 전복죽 같았다.
그녀가 가만히 죽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물이 솟구쳐 나왔다.
[ 어서 먹어, 대충 해열제하고 몸살약 이라고 하는걸 사왔으니까 약 먹고 쉬라구 ]
[ 엄마 보구싶어 ]
[ 연락하면 되잖아... 왜 집으로 안 들어간거야? ]
[ 울 아버질 몰라서 그래요. 난 지금 아버지 딸이 아니라구요....울엄만 그 흔한 핸드폰도 하나 없구 엄마가 먼저 연락 안하면 난 아무때나 연락 할수도 없어 ]
왜 이사람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걸까.
[ 지독한 사람 같으니라구... 언니는? ]
그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대전에 살아요 ]
그녀가 힘겹게 숟가락을 들어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죽을 떠먹는 모습을 그가 가만히
지켜 보았다.
[ ... 그럼 윤 정운 이라도 불러 ]
낮고 떨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자 시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하고 성큼성큼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가 떠나자 그녀는 자신의 일부분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아픔과 상실감에 뼛속깊이
외로움이 느껴졌다.
세상에,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