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던걸로 기억이된다.
그를 첨 만났던 해가...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윤희는 일찍 퇴근해온 남편 현
태와 함께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결혼5개월째인 윤희가 직장을 그만두고 이곳에 눌러앉은지가 이제 한
달도 채 안되지만 문화생활이 거의 차단된상태의 이곳 시골에서 하루
하루를 지낸다는것이 윤희에겐 여간 따분한게 아니었다.
그러니 주말마다 현태와 가까운 강가나 시장을 함께 다녀오는것은 현
태에겐 별 의미가 없을진 모르지만 윤희에게 있어서는 생활의 활력소
이자 행복감을 만끽할수있는 최고의 날이기도 했다.
"참,오늘 5시에 후배들과의 회식이 있는데 같이 갈래?"
돌아오는 차안에서 조수석에 앉은 현태가 윤희의 운전을 코치해주다
갑자기 생각났다는듯이 얘길한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무슨일이든지 미리 얘기해주는 법이 없군...`그
런 생각을 하며 윤희는 얼른 시계를 봤다.
4시40분을 막 넘어서고있었다.
"휴우..20분밖에 안남았네?"
윤희는 준비성,계획성없이 일이 추진되어지는것이 보통때같으면 퍽이
나 짜증이 났을텐데 오늘은 날아갈것같이 기분이 들뜨는것이 윤희스스
로 생각해도 참 이상했다.
강원도의 맑은 공기와 시원스레 뻥 ?b려있는 경치,그리고 카오디오에
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댄스곡에 흠벅 취해있었기때문일까...
결혼전부터 현태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곤 가급적이면 모임에 윤희
와 동반해서 가는걸 좋아했고 또 그렇게 해왔다.
한창 신혼때인만큼 현태의 윤희에 대한 사랑이 유달랐을수도 있지만
윤희의 이지적이면서도 귀염성있는 외모도 한몫 작용했으리라.
아내가 이쁘고 늘씬하고 거기다 능력까지 겸비해있으면 남들한테 자랑
하고싶고 우쭐대고픈 남자들의 심리를 현태라고 예외일수는 없을테니
까.
굳이 윤희의 의사를 물어올 필요는 없었을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현태는 윤희의 참석을 원할것이었고 다만,윤희의 의사
를 존중해준다는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물어본것 뿐일것이다.
올해들어 오늘이 가장 더운날씨를 기록하겠다는 기상뉴스는 정확히 맞
아떨어졌고 유난히 더위를 잘 타는 윤희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잔잔
한 체크무늬의 분홍색웃옷에 긴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은 터였다.
`왜 하필이면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나시티를 입고와서는...`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윤희는 자신의 옷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다소 보수적인데가 있고 쑥스러움도 곧잘 타는 윤희인지라 모임있다
는 사실을 진작에 알려주지않은 현태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집에 들렀다 다시 나오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할뿐만 아니라 수백미터
앞에 왼쪽강을 끼고있는 삼거리가 보였기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약속장소로 갈려면 우측으로 꺾어서 달려야하는데 윤희는
어떻게 할것인가를 아주 순간적이긴했지만 머릿속에서 갈등을 하지않
을수가 없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파란하늘을 군데군데 수놓고있었고 얕게 흐르는 계
곡주변엔 타지에서 온 피서객들로보이는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었
으며 나무에 매달린 매미들이 쉴새없이 울어대는 이 모든것들이 녹음
이 짙은 한여름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해주고있었다.
이렇게 활기에 넘치고 가슴이 확 트이는 그림을 뒤로하고 초록이 우거
진 적적한 산길 오르막을 달리고있는 외로운 차 한대가 있었다.
꼬부랑지고 울퉁불퉁 외진 산길을 15분가량 달렸을까...내리막길에 접
어들었는가 싶더니만 100미터 전방으로 우측편에 `강변식당`이라는 푯
말이 보였다.
"아휴...드뎌 다 왔네...무슨길이 이렇게 꾸불꾸불해? 누가 강원도
길 아니랄까봐"
여태 운전해왔던 윤희가 이제야 긴장이 풀린듯 현태한테 농담섞인 푸
념을 늘어놓았다.
"오우~~ 그랬어요? 그렇게 힘들었어? 근데 누가 운전하랬나? 자기
가 운전하고싶다고해놓고는 괜히..."
현태가 어린애 다루듯 윤희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말한다.
강변식당은 크지도 작지도않게 아담한것이 강을 옆에 두고있어서 그런
지 조금전의 더위는 어디로 가고 간들간들히게 부는 산바람의 시원함
이 느껴지는곳이었다.
"어? 쟤네들도 이제왔나보네?"
식당앞에 조심스레 차를 세우고 내릴려다가 현태가 가르키는곳을 보
니 앞쪽 나무 그늘아래 세워놓은 자주색 에스페로에서 남자3명이 내리
면서 반갑게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남편과 한 학교에 근무하고있는 후배들일거라고 생각하고왔는데 한사
람은 안면이 있었지만 나머지 두사람은 낯설었다.
"선배님, 이제 오십니까?"
"햐~ 그래...다들 제 시간에 잘 맞추어 왔구나?"
"안녕하세요?" 윤희가 차문을 잠그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예...안녕..하세요? 형수님?"
후배들은 윤희와의 첫대면에서 다소 놀란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현태또래의 주위에 있는 선배부인들을 보면 다들 나이가 있어 통
통하거나 눈가에 한두개씩 주름이 잡히는 전형적인.. 소위 말하는`아
줌마`를 생각해왔다가 현태와 나이차가 6살씩이나 나는 아가씨같은 26
살의 선배부인을 보니 어찌 놀랍지않을까.
거기다 윤희가 지금 입고있는 옷차림과 운동화는 그녀를 더더욱 어려
보이게 만들었으니..
윤희도 그들을 보며 나름대로의 첫인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고있었다.
`광수씨옆에 있는 저 사람은 좀 샤프해보이면서 귀여워보이는군...
그리고 파란색 줄무늬의 티셔츠를 입은 저 사람은 웬지 뺀질이 같아보
이는데....내 취향하곤 거리가 멀어..`
그랬었다..그때의 기억으로 틀림없이 그렇게 느꼈었다.
김현우...그의 이름 석자다.
뺀질이 같이 느껴졌던...윤희가 좋아하는 타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
각했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낯선 얼굴의 이 두 사람이 인근 포병부대에서 근무하는 소대장들이라
는것을 윤희가 쉽게 짐작할수있었던것은 매기매운탕을 주문한후 시작
되는 그들과 현태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2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