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 나다.. 오늘 어디 안나가는 날이냐..?"
"지금 나가봐야 돼요.."
"그럼 나갔다가 집에 좀 와라.. 정아가 또 문 잠그고 나오질 않는구나.."
엄마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있다는 걸 애써 모른 채 하면서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알았어."
날씨가 무척 따뜻했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지.. 길가에 피어난 만발한 개나리가 흡사 부풀대로 부푼 성숙한 여인의 발가벗은 모습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선 엉뚱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씹팔.."
문화센터에서 나와서 곧장 서울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강의 도중에도 온통 집 생각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지겨웠다.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는 상황들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었지..
반은 죽은 사람의 그것같은 시커먼 얼굴을 한 그녀의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가서 한번 말 해봐라.." 언제나 그랬었지.. 엄마가 해야할 일들을 그녀가 해야 했었지.. 다행히 정아는 배가 많이 고팠는지 나와서 먹을 것을 갖고 들어갔다. 그녀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몇시에 끝나..?"
"아.. 정현이구나.. 8시쯤이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이 7시 30분이니까 30분 정도 남았다. 그녀는 약속장소인 카페에서 30분을 기다리기로 했다. 달리 갈만한 곳도 없으니까 말이다. 커피 한잔과 담배 한갑을 시켰다. 커피와 담배.. 이렇게 잘 맞는 궁합이 또 있을까.. 그녀를 잠시나마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최상의 기호품들.. 담배 연기로 구름을 만들며 그녀는 혼자서 즐거워했다.
꼭 기철이 아니어도 됐었다. 누군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했을 것이다. 섹스는 단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따뜻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녀가 잠시나마 오르가즘을 통해서 세상과 단절되어 황홀경에 빠지는 것은 그녀에겐 일종의 도피책이기도 했다. 기철의 팔에 머리를 갖다대고 그녀는 발가벗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마치 뱃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처럼..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