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 난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아주 웃기는 한쌍의 바퀴벌레라는 명예롭지 못한 닉네임까지.
하지만 난 멈출수가 없었다.
친구들의 조롱과 그 남자 주변 사람들의 야유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난 어느새 그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졸업작품전을 앞두고 늘 밤을 새우던 그.
그 빈 캔버스 앞에서 술과 담배연기만으로 절망하던 그.
그 빈 캔버스를 채울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를 만족시킬 수만 있다면
난 정물이든, 풍경이든, 아님 누드 모델이라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사랑은 숭고했으며 열정적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의 싸늘한 시선 뿐이었다.
내 편지는 항상 그의 화실 휴지통에서 겉봉조차 뜯기지 않은채 구겨져 있었으며, 내가 사준 양말이며 액자등은 그대로 구석에서 나뒹굴었다.
난 시간 날때마다 그가 없는 틈을 타 그의 화실을 청소했으며 국을 끓이고 밥을 해 놓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어느날 잔뜩 술에 취한 그가 불쑥 나타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의 화실을 청소하고 있던 중이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그가 내게 소리쳤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야.
너 같은 애가 왜 형편없는 날 좋아하는 거냐구.
난 니가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인간 쓰레기라구.
제발 날 더이상 힘들게 하지마, 이 바보야.
난 니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데 왜, 왜 하필 나냐구, 왜..."
그는 내게 쓰러져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난 그 순간 그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눈물범벅이 된 그의 뜨거운 얼굴이 내게 다가오고 난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