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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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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동안


BY hl1lth 2001-03-30

철우는 지금 가볍게 흥분하고 있었다. 찿지 못할 것 같았던 증인이 나타나 지금 자신에게 모든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희가 살고 있던 집의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이층집에 산다는 이 아줌마는 지금껏 너무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것 같아 이제서야 나섰노라고 말하며 몹시 떨고 있었다.

그날 그 아줌마는 잠이 오지 않아 달빛아래 양주 한 병을 꺼내 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방 안 공기가 너무 후덥지근하다고 느껴 창문을 열려고 창가로 갔다고 한다.  한 남자가 
술이 많이 취해 비틀거리며 어떤 남자에게 시비를 붙듯 달려들었고, 상대방 남자는 술에 취
한 남자를 단 한방에 넘어트리고, 술에 취했는지 길바닥에 쓰러져 있던 여자와 함께 그 남
자를 차에 싣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때는 그저 쌍쌍이 짝을 맞춰 놀다가 술이 취해 시비가 붙었나 보다 생각하고, 아무 저항
도 없이 차에 태워지는 두 사람을 보며 그저 "많이 취했군 ! 그래도 싸웠다고 친구를 길바
닥에 버려두지 않고 챙겨서 싣고 가는 것을 보니 다행이지 뭐야, 그런데 이 밤중에 어디서
저렇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누?" 라고 생각했을 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었는데, 보름전
쯤 우연히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 앞집 사는 우희가 살해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우희가 행방
불명된 그날이 바로 자신이 그 사람들을 목격한 그날임을 알았다고 했다.

더불어, 차에 그 두 사람을 태울 때 옆에서 거들어주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의 인상착
의는 평소에 철우가 의심쩍게 생각하고 있던 용의자의 인상과 많이 닮아 있었다. 철우는 
아주머니에게 들은 정황들을 상세하게 조서로 꾸미고 난 후 다시 증인이 필요 할 경우 부르
겠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병원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 동안 우희의 주변을 돌
며 수사하여 얻은 자료들과, 증인의 증언과 상황을 들어보니 주민이 보았다는 그 여자가 병
원집 사모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차를 몰아 그 병원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병원은 폐업을 한 듯, 문이 닫혀 있었고 이층의 살
림집에는 나이든 가정부 한 사람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 계십니까?"
"사모님, 지금 안 계신데요. 어디서 오셨어요?"
"예, 서에서 나왔습니다. 어디 가셨는지 혹시 모르시나요?"
"지금 여행 중이시라 집에 안 계시구요. 내일 낮에 돌아오실 거예요."

"여행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글쎄요. 보통 행선지를 알리고 다니시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아이들에게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내일 오신다는 말씀만 남기시고 떠나셨어요."
"차는 가지고 갔나요?"
"아니요."

철우는 초조해졌다. 여행을 떠났다면 혹시 도주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집에는 내일 돌아온
다고 했다니까 우선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철우는 동료들을 불러 집 근처에서 함께 잠복
근무에 들어갔다.

한편 병원에서 미순이는 잃어버린 기억을 찿아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기억을 되돌
리기 위해 무척이나 어렵게 자신에게 털어놓은 봉순의 말들은 도무지 믿고싶지 않은 일들
뿐 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을 향해 조소 띤 얼굴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한 여자의 얼
굴이  자꾸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봉순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도 그 여자는 남
편이 만났었다는 그 여자일지도 몰랐다. 미순은 머리를 흔들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들. . .게다가 남편은 지금 영안실에 누워 장례도 치르지 못하
고 냉동된 채로 갇혀 누워있을 것이었다. 미순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미순에게 자신을 향해 조소띤 얼굴고 웃고 있는 그 여자의 모습과 함께 남편이
바닷가의 절벽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고, 자신이 남편을 등뒤에서 밀어버리고 있는 환영이
떠올랐다. "아~아악!" 머리를 쥐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미순은 그만 병실의 차가운 바닥에 쓰
러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