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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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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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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동안


BY hl1lth 2001-03-30

봉순 과 통화를 마친 미순 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비척거리며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와 길 건너편에 보이는 경찰서
건물을 바라보는 미순 의 눈은 공포감으로 거의 절망적이었다.

가냘픈 손이 파르르 떨리며 가슴을 쓸어 내리고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킨 미순 인 또박또박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철제 책상들이 놓여있고 책상 위가 어지러운 가운데 여기저기서 타이프 치는 소리, 싸우는
소리, 우는소리 등이 들렸다. 마치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 .
"어떻게 오셨습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낯설지 않은 얼굴 하나가 미순 을 보고 서있다.
"저, ~"
순간 미순 은 차가운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쓰러져 내렸고 "미순 아!, 너 미순 이 맞지? 정신
차려!"
쏱아져 내리듯 기절한 미순 을 안아 올리며 이미 중년의 건장한 모습으로 바뀐 철우가 당황
하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야?"
김 반장이 철우 에게 묻는다.
"어, 어디 눕힐 데가 없을까?"
"숙직실로 우선 옮기지."
철우 의 등에 업힌 미순 의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늘어진 손이 처량하게도 이리저리 흔
들리고 머리카락이 흩뿌려지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철우 가 숙직실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안은 비어있었고, 한 두 사람 누울 만한 공간에 전기장판이 깔려 있었다. 김 반장과 함께 미
순 을 한켠으로 옮겨 뉘인 철우는 불안한 모습으로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라이타에 불
을 당겨 입에 물고는 깊게 한 모금 빨아 숨을 들이 마쉰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근 십 여년 만의 상봉이 경찰서 강력계에서 라니, 그것도 실신한 채로. .
. 스무 살 처녀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한 눈에 담박 알아볼 수 있었던 미순 의 너무도
야윈 모습이 애처로워 가슴이 저리는데 미순 이 고운 눈을 힘없이 뜨며 철우 를 바라본다.
"정신이 드니? 어떻게 된 거야"
말없이 철우 를 바라보는 미순 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급기야 마른 뺨 위로 또
르르 굴러 떨어졌다.
"내가 남편을 죽였어, 내가, 내가. . . "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바래며 철우 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애가 뭐라는 거야?
떨리는 손으로 미순 의 손을 잡으며 철우 가 되묻는다.
뭐라고? 니 가 뭘 어쨌다고?
"내가, 내가. . "
미순 은 다시 정신을 잃었고 철우 는 급하게 엠브란스를 불렀다.

벽이 온통 하얗고 침대 시트가 하얗게 깔려진 병원 침대 위에서 미순 은 팔에 닝겔을 꽃고
잠들어 있었고 하루를 꼬박 침대 옆에 있었던 철우 는 부시시한 모습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철우 는 긴장한 듯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 반장이었다.
미순 이의 이름과 전에 살던 주소로 현재 미순 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철우가 수소문을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손 반장? 나 김인데. . . 자네 친구. . . 자네가 준 동대문쪽 예전주소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더군. . . 그리고  안좋은 소식인데. . . 남편이 몇 일 전부터 동네에 나
타나질 않았데."
"남편 직업은 뭐고, 둘 사이는 어땠다던가요?"

"남편은 사업을 하는 모양인데 뭐 일이 그렇게 잘 되어 가지는 않았던 것 같고, 사는 것은
넉넉지 않았어도 부부간엔 금술이 좋았다더군.  친척들과의 관계도 좋았던 것 같고. . . 없으
면서도 넉넉하게 살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남편 사업이 별로 라서, 안사람이 험한
일 마다 않고 이일 저일 열심히 하면서 살았던 모양인데. . . 고생한다 생각하는 푸념한번
들어 보질 못했다더군, 늘 웃고 다니고, 사람들하고의 관계도 좋았었데,  그런데. . .그 여자
분, 한 일년 전부터 뭔지 몰라도 고민이 많아져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고들 하더
군"
"고생하셨습니다. 옛날 주소로 수소문 하셔서 찿아 내기 힘 드셨을 텐데. . .
"늘 하는 일인걸 뭐,"
"이따 서에서 뵙겠습니다."
"알았네,"
전화를 끊은 철우 의 마음은 착찹 하기만 했다. 

착하기만 한 미순 에게 도데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남편을 죽였다니, ..." 침대 위에 정신
을 잃고 누워 있는 미순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철우는 침대 곁의 의자에 앉았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유리병 속의 물방울을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미순이 정신이 들기
를 기다리고 있던 철우는 어린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함께 했던 봉순의 모습을 미순의 얼
굴에서 읽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