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남 -
그녀의 전화를 끊고나서 난 담배를 느긋이 두어대 더 피운 다음에야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고도 시동거는거 조차 잊을 만큼 내 머리속은 온통 혼란으로 가득차 있었다.
영미를 만난다...
그녀가 나에게[ 전화 할께요] 라는 말은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오늘 나에게 전화 하기 까지 정확하게 3년하고도 2달 16일이 지난일이란걸 난 다시금 나의 다이어리 한쪽을 들추어 보고서야 알았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후에 난 열흘이 지난다음에야 그녀가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디론가 잠적해버렸다는 소식을 들을수 있었고 한동안은 아침마다 다이어리에 그녀가 사라진 날로부터의 날들을 세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1년을 조금 넘기고 부터는 조금씩 잊혀지기 시작해서 가끔씩 여러날들을 한번에 세어보다가 이제 그것도 하지 않기 시작한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녀는 언제나 처럼 전혀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언제나 처럼 그녀는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어왔다.
이슬처럼 맑았던 그녀의 눈동자와 그 눈안에 비추이던 내 모습을 난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이상 그녀가 나를 찾지 않을꺼라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마치 어제 만났던 사람마냥 나에게 그렇게 다시 다가서기 시작했다.
화요일의 충무로는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인쇄할 종이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생기있게 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 난 갑자기 그녀를 만나는 일이 덜컥 두려워졌다.
과연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고 그녀에게 변해버린 나의 모습을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할지...또 그녀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했을지에 대한 두려움 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난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시간이었고 어렵게 다가온 기회였다.
사람들 속을 걸어 하얀풍차 문앞에 섰을때 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확 밀려 나오는 따뜻한 공기안엔 커피향기와 담배냄새가 동시에 날 반갑게 맞아 주는듯 했다.
일층을 휘 둘러 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없었고 몇몇 테이블에 연인들과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중년의 남자들만이 보였다.
그래 영미와 내가 만나던 자리는 이층에 있었어...
나무계단에 투박한 발소리를 남기며 올라갔다. 창가에 나란히 있는 두자리로 난 떨리는 시선을 주었다.
그녀가 있었다.
언제나 처럼 그녀의 길고 곧은 생머리가 그렇게 반짝 거리고 있었다. 내가 올라오는 계단을 등지고 앉은 그녀였지만 난 뒷모습 만으로도 그녀라는걸 알수 있었다.
한송이 수선화 같은 갸날픈 그녀...
다가가 그녀의 갸날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영미야...]
천천히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틀어왔고 난 3년하고도 2개월 16일만에 그녀를 만났다.
[언니....]
나를 부르는 그녀는 분명히 영미였는데
왠지 그녀가 멀리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오랜만이야...] 내가 그녀에게 처음 건넨말은 오랜만이라는 말이었다.
왠지 아주 먼 사람에게 말하듯이...
그녀의 앞자리에 앉으면서 찬찬히 난 그녀를 ?어 보았다.
여전히 긴 생머리에 갸름하고 갸날픈 얼굴가 몸... 어딘가 슬퍼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그녀는 더이상 이슬같이 맑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많이 피곤해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그녀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알던 영미는 저런 눈빛이 아니었는데...
난 담배를 한대 꺼내 물었다.
[언니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구나...]
가만히 고개를 밑으로 숙이며 그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가 없는 쪽으로 연기를 뱉아냈다.
[여전하구나... 넌 여전히 수선화 같아...]
반짝 고개를 드는 그녀의 얼굴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녀의 눈망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언니... 준하오빠....준하오빠.... 잘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