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내 여편내들 말마따나 머슴은 키도크고 어깨도 딱 벌어진데다가
얼굴도 그만하면 잘생긴 편이다. 인물로 봐서는 머슴으로 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거기에 비하면 죽은 자기 남편은 얼굴은 잘생기고 성격도 온순하여
생전 여편내 속 썩이는 일은 없었지만 그러나 항상 몸이 허약하여
죽기전까지 병치례만 하고 남자구실도 제대로 한번 못해보고
저승길로 간 것이다. 재산이야 많던 적던간에 남녀가 부부로 인연을 맺어
백년해로하고 자식들 건강하게 자라주면, 그것이 인생의 삶에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인데, 남편이 일찍죽어 어린자식들 데리고
힘들게 살아 가야할 신세가 되었으니, 저 머슴 신세나 자기 신세나
별로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떤 연민의 정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봄날이 해가 길다고 하지마는,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다보니
해는 어느덧 한낮을 지나 서너시쯤 되었다.
아침에 나무를 하러 올라간 머슴이 벌써 한짐의 나무를 지고
마을로 내려오고 있다. 나무짐이 얼마나 큰지 거짓말좀 보태서
큰 집채만하게 보인다. 아침에 올라갈때도 만났는데 내려올때도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만나기 싫어도 자주 만나게 될 운명인것 같다.
괴산댁은 그저 지나가겠지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괴산댁 짚앞에 와서는 나무짐을 바처놓고,
머슴이 괴산댁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가,
괴산댁은 좀 놀라는 기색이었으나, 그는 아무렀지도 않다는 듯이
연신 얼굴에 흐르는 땀을 삼베수건으로 닦으면서
여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 아줌니, 저 시원한 냉수 한그릇만 주세유, 목이 좀 말라서유~~"
그는 이말을 하고서는 빙긋이 웃고 서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물한그릇 달라는데 마다고 할 사람이 어디있는가?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물 한사발을 떠다가
그남자 앞에 내밀었다. 그는 물그릇을 받아들더니 벌떡벌떡
단숨에 물을 들이 키고는 빈그릇을 여인에게 건네준다.
"아줌니, 잘 마셨어유~ 산에서 목이 말랐는데, 어디
물 마실곳이 있어야지유, 참고 여기까지 내려 왔구만유"
그는 허리춤에서 담배봉지를 꺼내드니 담배 한개피를
꺼내물고는 않으라 소리도 안했는데, 마루에 걸터 않더니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낸다.
괴산댁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어쩔줄 모르고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 촌동내서야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자기는 혼자사는 여자이고 상대방은 오늘 처음 만난 남정내가 아닌가?
"지는 건너동내 박영감댁에 일꾼으로 왔구만유, 그리고 지 이름은
이 덕배라고 해유~, 아줌니는 여기서 오래 사셨남유?"
그는 묻지도 않는 말을 잘도 해댄다.
"아니유, 지는 시집와서 여기에 살아온지가 십년이 조금 넘었구먼유~
괴산면에서 시집와서 괴산댁이라고 해유~"
"지도 여기 오기전에 그 옆 면에서 남에집 살이를 했구먼유~
그런데 바?? 양반은 들에 나가셨남유? 아침에도 안 보이던데......"
갑작스런 남편에 대한 질문에 여인은 좀 당황하는 기색이
역역하게 보인다. 그러나 언제 알아도 알게될 일이니 체념을 한듯
대답을 하였다.
"이 년전에 돌아 가셨슈~" 여인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 지면서
모기소리 만큼 적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덕배는 괴산댁의 얼굴 표정을 읽고는 자기가 묻지 않아야
될일을 물었다는 생각에 갑자기 일어나 마당에 담배불을
비벼 끄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죄송해유, 지가 주책없이 안 물을 것을 물었구만유~
지는 이만 가 보겠시유, 잘 쉬었다 가유~ 안녕히 기셔유~"
그는 정말 미안 하다는 듯이 인사를 꾸벅하고는 나무짐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여인은 아무 말없이 고개만 꾸벅하고는
나무짐을 지고 내려가는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남의집 머슴일을 항망정 그의 성품은 온순하게
보였고, 남에게 해를 끼칠 사람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순한 양같이 보였다.
그나이 먹도록 아직 장가도 못가고 이집저집 떠돌아 다니며
남에집 살이 하는것이 한편으로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였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다 다르니,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모든것을 운명에 맡길수 밖에....
여인은 갑자기 아침부터 나타난 덕배 생각으로
머리속이 가득 차있다.
( 3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