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내 산골짜기에 쌓였든 눈이 녹아내려 바위틈 사이로 졸졸졸 흘러내리고,
따뜻하게 내려쬐이는 봄햇살에 들에는 눈속에 움추렸든 보리싹들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고 있다. 골짜기 여기저기에 제멋대로 드문드문
서있는 개복숭아 나무에는 어느새 복숭아꽃이 활짝 피어있다.
농부들은 봄농사 준비에 분주하고 아낙들은 동네앞 개울물에서
겨울내 못했든 빨래들을 하느라고 시끌벅적하다.
봄날의 산촌의 아침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도연명(중국 宋나라때의 시인)의
武陵桃園(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가?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다.
나이 열아홉에 이 산골짜기 동네로 시집와 살아온지도 벌써
십여년이 돼간다. 괴산댁은 그동안 아이 둘 낳고 서방하고 그래도
다복하게 살아왔는데 이년전에 서방이 염병(장질부사)으로 죽고난
후 부터는 세상사가 모두 귀찮고 일에대한 의욕도 없어졌다.
그래도 산목숨은 살아야되니 일곱살, 열살짜리 남매를 데리고
논 너뎃마지기와 밭 몇대기를 일궈가며 근근히 살고있다.
동네 여편내들이 빨래터에서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떨어도,
가끔 묻는말에 대답만 할뿐 흥이 나지를 않는다. 또 웃고 떠들면
저년은 서방죽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부터 히히덕 거린다고
흉잡힐지도 모른다는 것이 염려도 되었다.
그래도 시집 오기전에 면소재지에서 살아서 그런지 비록
깊은 산동네에 살지만 깔끔하게 하고 살아왔다.
얼굴도 이쁘장하고 키도 훤칠한데다가 농사일을 할망정
옷도 항상 깔끔하게 하고 다닌다. 그러니 동내 남정네들이
제 여편내 두고도 가끔 곁눈질을 할때도 많이 있었다.
성격도 쾌활하여 서방 죽기전에는 항상 누구를 만나든
잘떠들고 웃기도 잘하였다. 그러니 동내 남정내들이나
여편내들도 괴산댁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방 살아있을때도 가끔 침흘리던 동내 남정내들이
서방이 죽은 후에는 자기 마누라 두고도 몰래 접근해오는
경우도 있다. 손바닥 만한 동네에 가구수라야 이십여가구 뿐이고
건너 동내에 삼십여호가 살고있다.
어떤 남정내는 마누라 몰래 쌀말이라도 들고와 놓고 가는 때도있다.
여기저기서 남정내들이 마누라 몰래 들고오는 먹거리도 쾌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는 이쁘게 생기고 볼일이다.
자기 마누라한테 들키면 온 동내가 몇일동안 시끄러울 터인데
그것을 감수하고 접근하는것을 보면 남정내들이 간이
부어서 배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그저 이쁜 여자라면........
그러니 행동을 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동내 여편내들 한테
머리채 잡히기 쉽상이고 잘못하다간 남의 서방하고
붙어 먹었다고 멍석말이 당해서 동내서 쫏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자가 이쁜것도 장단점이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동네를 떠나서 이사를 가자니, 남편 죽은지
삼년상도 안치루고 이사가는 년이라고 흉볼것도 같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건너마을 박영감댁에 건장한 머슴이
한사람 들어왔다. 촌동네에 이웃집 밥그릇이 몇개인지
죽을 먹는지 밥을 먹는지 훤히 알고 사는 처지에
그소문은 한나절도 안넘고 건너왔다. 동내 여편내들이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니 일도 잘하고
키도크고 머슴치고는 잘생겼다는 것이다.
남의머슴 잘생기면 어떻고 못생겼으면 어떻단 말인가?
집에 있는 자기 서방이나 잘 챙길일이지.......
여편내들이 밥먹고 할일도 되게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남자고 여자고간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쁘고 잘생겨서 나뿔거야 없지 않은가?
그럭저럭 몇일이 지났다. 그런데 이동내에서는 산에서
땔감 나무를 하려면 괴산댁 집앞에 길을 지나야
뒷산으로 올라갈수 있다. 머슴이 하는 일이란 우선 산에서
나무를 하루에 한짐씩은 해야한다. 그래야 아궁이에 불도때고
소여물도 끓일수가 있다. 그러니 괴산댁의 눈에도 그머슴이
한번쯤은 만날수가 있을 것이다.
하루는 아침 일찍 머슴이 나무를 하려고 산으로 오르는 길에
괴산댁 집앞을 지나다가 마침 마당에 서있던 괴산댁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첬다. 갑자기 눈이 마주치자 서로
약간은 놀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여러해를 한동내에서
같이 살아온것처럼 얼굴표정이 바뀌더니 서로 눈인사를 하고는
머슴은 산으로 올라갔다.
괴산댁은 한참동안을 머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2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