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나갔다. 영한이 깨어났다. 그의 계모인 상희가 걱정스런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제후가 들어왔다. 영한은 제후에게 동수의 안부를 물었다.
척추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하반신 마비가 왔다고... 그래서 수술중이라고... 제후가 말했다.
영한은 할말을 잃었다. 일어나서 수술실로 향했다. 상희와 제후는 아무 말없이 영한을 따라 나섰다. 영한의 두눈에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수술실 입구에서 도현과 가현, 진경이 걱정스런 얼굴로 앉아있었다. 영한은 눈물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떻게 됐어요?"
"아직 수술중이예요. 벌써 7시간이 지났는데..."
도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진경은 소리 죽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가현은 소리내여 아버지를 부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영한은 어깨에 힘이 빠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의사가 나왔다. 여섯명은 의사의 앞으로 몰렸다. 의사가 수술은 성공적이지만, 결과는 차츰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마비가 풀릴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성공적이라는 말에 여섯사람의 표정은 밝아졌다. 시간이 조금 흐른후 수술실에서 동수의 모습이 보였다. 영한은 소리내여 울며, 동수의 손을 잡았다. 진경은 영한과 동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두눈에 눈물이 소리없이 자꾸만 흘렀다. 도현과 가현은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눈 언저리가 바알갛게 된 두 자매는 안심의 눈빛이 보였다. 제후는 안스러운 듯 도현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며칠이 지났다. 동수의 오른쪽 다리는 마비가 풀려 목발을 짚고서 절뚝거리며 걸을수 있게 되었다. 진경과 도현은 병원에서 교대로 간병을 했다. 도현은 유치원에 출근을 했다가 저녁이 되서야 병원에 와서 진경과 교대를 할 수 있었다. 매일 오후가 되면 영한과 제후가 병원에 들렀다.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가곤 했다.
오늘은 수술 결과를 테스트 해보고 최종진단이 나오는 날이다.진경, 도현, 가현, 영한, 제후가 주치의 앞에 모여 앉았다. 사진과 챠트를 번갈아 보며 주치의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왼쪽다리는 마비라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재활운동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진경은 두눈을 감았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너무 가혹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남에게 죄짓고 산것도 없고, 사람이 좋아서 이용당하고 손해만 보고 살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노후를 한쪽다리에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니!...
도현은 한쪽다리라도 완쾌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평생을 한쪽다리에 목발을 의지 하고 살아갈 아버지의 모습에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영한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하자 또다시 미안함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동수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행복해 하던 자신이 동수를 그렇게 다치게 하고 평생 불구로 남게 했으니...
가현은 자신이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빠졌다. 큰아버지를 아버지인냥 따르며 지낸 시간들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한없이 착한 아버지, 어머니, 언니를 버리고 큰집 식구들과 한 가족처럼 지낸 세월이...
일본에서 큰집가족들이 다녀갔다. 주치의를 만나서 의논을 하고, 동수와 진경에게 일본으로 갈 것을 권유 하였다. 동수는 희망을 걸진 않지만, 애처로운 그의 아내 진경의 부탁으로 일본행을 결정했다.
공항에서 혼자 남게 될 도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도현은 슬픈 미소를 아버지와 어머니, 가현에게 보냈다. 모처럼 한가족이 가족처럼 의지했는데, 모두들 떠나고 이제 혼자라니...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는 영한에게 동수는 멋적은 듯 어색한 웃음과 함께
"당분간 낚시를 못하게 됐네... 다시 돌아오면 자네가 좋은 곳 많이 소개 시켜줘."
그렇게 도현과 영한, 제후를 남겨놓고 세사람은 떠났다. 도현은 목발을 짚고 멀어져 가는 동수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앞을 보고 서 있었다.
불이 꺼진 텅빈 집에 들어섰다. 인터폰이 울렸다. 등기우편이 왔다고... 도현은 우편물을 찾아와서 쇼파에 앉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법원에서 온 우편물이었다. 아버지가 보증인인데, 모두들 잠적한 후라, 동수의 집을 차압한다는 통보 였다. 도현은 놀라 영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현을 바래다 주고 돌아가던 영한과 제후가 상기된 얼굴로 되돌아왔다. 우편물을 확인하고 세사람은 할말을 잃었다.
도현은 급하게 낚시점으로 가야한다며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도현의 예상대로 낚시점의 서랍에는 굳게 닫힌 서랍이 있었다. 영한과 제후가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열었다. 거기에는 여러번의 독촉장이 들어있었다. 도현은 망연자실했다. 양쪽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이제 어떡해 해야하나...
아버지도 안계신데...
보증을 써 준 친구분의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았지만... 공허한 울림만 되풀이 될뿐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제후는 또한번 도현의 마음을 울리는 현실에 분개했다. 영한은 이렇게 자꾸만 힘들어 하는 도현을 미안해 하는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