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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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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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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이나래 2000-12-17




"어? 지금은 웃네! 웃으니까 훨씬 보기 좋네. 어디루 가는 거죠?"


"티슈 사러 가는 거잖아요."

"참, 그랬지. 그거 꼭 사야 됩니까?"

"4 장 썼다구, 똑같은 걸루 물어내라구 그랬잖아요, 그쪽에서."

"푸하하..됐습니다. 울음 그치게 하려구 그런걸 갖구...이젠 안

울꺼죠? 여기가 내릴 곳은 아니죠? 그럼 다음 열차 오면 타구 가

요."

"고마워요. 정말 그냥 가두 돼요?"

"진짜루 고마워요?"

"그래요. 정말 고맙게 생각해요."

"그럼, 시간 괜찮으면 짜장면 먹으러 갑시다. 나 지금 무지하게

배가 고프걸랑요."

기막힐 노릇이군. 겨우 티슈 몇장 쓰구 난데 없이 짜장면이라니...

이걸 같이 가야되는건지, 모른척하구 오는 열차를 타버릴 껀지

망설이고 있는데,

"걱정마요. 대신 곱배기는 안 먹을께요. 실은, 점심두 굶었어요."

하긴 나두 어차피 집에 가면 혼자서 라면이나 먹을꺼니깐 같이

먹지뭐.



"제대한지 1 주일 됐습니다. 사람을 찾아가는 일이었죠."

"알겠다! 누구 찾는지.여자, 맞죠? 글구, 고무신 꺼꾸로 신구

도망갔죠?"

"허! 도사네. 어떻게 그리 잘알죠? 혹시, 거기두 고무신 거꾸로

신어 봤었나부지?"

"나요? 고무신만 거꾸로 신었나? 운동화, 쓰레빠, 구두. 다 거꾸

로 신었었는데..."

"짜장면 한 그릇 사주구 누구 악올려요? 그리구 지조 없이 배신

때린걸 지금 자랑하는 겁니까?"

"자랑은, 아니구요.찾아서 뭐하게요? 이미 떠난 사람을...."

"참, 그러니까, 거기두....실연 당했죠? 그래서 아무데서나

질질 짜구다니구.....맞죠?"

"그래요, 잘 봤어요. 엄청난 배신이죠. 나만 냅두구 가버렸으니까

가버린 사람, 도망간 사람, 떠난 사람은 빨리 빨리 잊는게 좋을

께예요."

"그럴까요? 그럼, 우리 실연 당한 사람끼리, 한 잔, 어때요?"



26 살의 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저녁을 같이 먹고, 둘이 함께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고, 그 이튿날 아침에 깨어보니 나는 침대에 있었

고, 그는 쏘파에서 자고 있었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기억의 편린들을 주어서 짜 맞추어 봤다.

그의 집이 춘천이란것도, 체대3 학년에 입대 했다는것도, 이름이

한/정/태/라는 것까지 기억해 놓고, 메모를 써놓고 출근을 했다.

< 한정태;

일어나는 즉시 내 집에서 나가 줄것!

열쇠는 신발장 위 파란 컵 속에 있음.

잠근 키는 꼭, 경비실에 맡기고 갈 것!

장 미사>



에제 마신 술 때문에 종일 머리가 깨질것 같아서 서둘러 퇴근을

했다. 머리도 물론 아팠지만, 실은 그가 더 궁금해서 더욱 퇴근을

빨리 했지만.


"아저씨, 누가 열쇠 맡긴거 없어요?"

"1601호 아가씨구나. 없는걸요? 누가 다녀 갔었나요? 몰랐는데."

"네, 알았어요, 수고하세요."

뭐야, 그럼 아직두 안 갔단 말이야?

현관문을 비틀어 보니 잠겨 있었다. 아직까지 자는걸까? 어떻게

쫓아내지? 나두 혹시 실수는 안 했을까? 에라, 모르겠다. 저나 나나

둘다 취했었는걸, 내 비상용 키로 문을 열었다.

집안은 출근하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흔적은 식탁 위에 메모지 뿐이었다.


< 미사씨!

미안...미안...곱배기루 미안.

어떻게 여기서 잤는지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

혹시,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아뭏튼, 미안하고, 고맙네요.

잘 울고, 또 쓸데없이 잘 웃던거 기억하구 갑니다.

한정태 >

어어, 그럼 키는 어떻한 거야?

정신 없는거 같으니라구. 경비실에 맡기랬더니 그냥 가져갔구만.



키는, 잃어버린 키는 또 맞추면 언제든 쓸 수 있지만,

사람끼리의 어긋난 만남은, 한번 고장나기 시작한 내 삶은 어디가

서, 누가 고쳐서 다시 맞추어 줄까?



며칠이 지났는지는 기억이 없었다.

한정태, 그사람의 기억은 그 날로 난 씻은 듯이 잊고 지냈으므로.

그랬는데,

내 집앞에 그가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이거, 주려구. 내가 깜빡 잊구 주머니에 넣구 가져 갔더구만,

근데, 매일 이렇게 퇴근이 늦니? 3 시간은 기다렸다."

"굳이 안 갖구 와두 되는데...키 또 있어. 그래두 내꺼니까

이리주구, 잘 가. 근데, 너 나한테 반말 했지?"

"2 살 차이에, 그럼, 반말좀 하면 안돼?...요? 그리구, 잘 가..

라구? 디게 살벌하네. 키 갖다 주려구 춘천에서 일부러 여기까

지 왔는데.. 너무한다. 그럼, 잘있어. 요샌, 안 울구 다니냐?"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획 몸을 돌려 가버렸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야 난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을 연 순간, 난....! 세상에.....!

커다란 꽃바구니가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