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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장미정 2001-01-17



겨울 날의 동화.........


김해 공항에 도착한 일수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며, 그녀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높은 빌딩으로 가득찬 그 곳에서
그녀를 만날 부푼 마음으로 무작정 걸었다.
전화로 미리 알아둔 그 곳 위치에 도착한 그는
커피숍을 찾기 시작했다.
해주씨가 있을 건물 지하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그는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차 주문 하기전 공중박스로 향한다.
준비해둔 메모지로 꺼내 누른 번호...
신호음이 들리자 서서히 떨리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네....수고 많으십니다. 죄송한데, 송해주씨 좀 부탁드립니다."

"네....근데,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김 일수라고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대기중 멜로디가 들리자, 갑자기 호흡이 불규칙 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다는 증거였다.
뭐라고 말할지 고민도 하기전에
송해주......
그녀의 목소리가 일수의 가슴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네....송해주 입니다."

"저.....저....해주씨...."

"일수씨?"

"네..접니다."

"웬일 이세요?"

"네? 웬일이라뇨? 반갑지 않으세요?"

"훗~ 그래요. 반갑네요.."

"바쁘세요? 출장까지 가실 정도면 바쁘신가보네요."

"후후....근데, 여기 연락처 어떻게 아시고?"

"해주씨....."

"네?"

"저....잠시만 만나요."

"만나요? 저 여기 부산이에요.."

"알죠....당연히....그런데 말입니다.
저도 부산이거든요.."

"네?? 어떻게 부산을...."

"시간 잠시만 내주실수 있으세요?"

"아니.....저 조금 있으면 퇴근해요. 어디시죠?"

"해주씨 회사 지하에요.."

"정말요?"

"나참...속고만 사셨나원.....하하하"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금방 내려 갈께요?"

"그래요..기다리죠..."

그녀가 자신을 반겨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싫지 않다는 느낌....
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뭐라고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자신이 여기까지 와야만 했던 어떤 이유같은
변명을 널어 놓을게 막상 기억나지 않았다.

왜 왔냐구 물으면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했다.
차라리, 저번같이 술을 먹여 버릴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타오르는 목을 적시기 위해 물을 마시는 순간,
두리번 거리는 그녀를 발견한다.

"어머!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당연히 놀래는 그녀의 표정이였다.

"훗~ 글쎄 말입니다.....먼저 좀 앉으세요."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한 참 일수를 쳐다보았다.
일수는 말없이 그녀를 잠시 응시하며

"해주씨......나 할말 있어요."

"네???"

"나.....사실.......아.......아..닙니다."

망설였다.
아니, 떨린다고 해야 할 것 같은 벅차오름....
사랑이 아닌데...
분명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왜 핏줄이 막히듯 갑갑하고 저려오는지....
잠시 아찔하는 현기증 마저 느껴진다.

"나갑시다...제가 술 한잔 살게요.."

"일수씨..."

"왜요?"

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경질 적인 말투가 나오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 놀라는 듯 서있는 일수를 가만히 쳐다볼 뿐이다.

"해주씨.....정말 미안한데,
지금 제가 하자는 대로만 해주세요.
난 무례한 행동은 안할테니........네??"

그녀는 그제서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일수는 해줄 말이 당장 없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빠져나와 두리번 거린다.
잠시 둘은 조용히 걷기 시작했다.

"지금 술 한 잔 해도 괜찮나요?"

"네......"

"아까......미안해요...화내서..
잠시 우울하더라구요......
아~ 저기 괜찮겠네요. 우리 저기 들어가요.."

조용한 호프집이였다.
어둠침침 하지도 않고 화사한 분위기에
한결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잠시, 일수는 말없이 술잔만 비워갔다.
둘은 말없이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듯 했다.
일수는 몇 잔의 술을 비우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해주씨....."

"네....."

"난......난 말입니다...해주씨...
내가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 마시고
들어주세요."

".................."

"저.....해주씨 좋아합니다.
여기까지 온거보면 무슨 뜻인줄 아실거라고 짐작
하시겠지만, 우리........우리.....말입니다.
결혼 전제로 한번 사궈 볼래요?"

"일수씨......"

"아뇨....잠시만....
하고 싶은 말 있어도 잠시만.....
기다렸다 나중에 해주세요....
잠시만......아주 잠시만....내 얘기 좀 들어 주신 다음....
알았죠?
난 사랑을 안 믿어요.....사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송 해주.....당신이 말입니다.
내 맘속에 들어오고 있다는 겁니다.
난 사랑을 안 믿는데......
근데, 난 당신이 좋아지고 있어요.
그냥....보고 싶고, 목소리듣고 싶고,
왠지 같이 있음 편안 해질 것 같거든요.
당신은.......날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왜 좋냐고 묻는 다면 솔직히 정답 같은건 없어요...
그냥.......그냥 좋아요....당신이......."


일수의 말이 끝나자,
해주는 술잔만 매만질 뿐....쉽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던 음악마저
체인지가 되어도, 둘은 서먹하게 말이 없었다.
사랑을 모르고 믿는 않는다는 남자 앞에서
행동을 어찌 할지 난감해 하는 듯한 표정이였다.

해주는 무엇이라도 결심한듯 반쯤 채워진 술잔을
한순간 들여마셨다.
그리고 조용히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일수씨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왠지 저랑은 사람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냥......여한튼 그냥....아닌것 같아요.
저를 그렇게 생각 해주셨다니 전 고맙지만,
전 아직 누군가 제 옆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보지
않았어요.....아직 그러고 싶지 않구.."

"왜 그렇게 생각하죠?
제가 지금 부담을 드릴려고 했던 말도
아닐 뿐더러, 지금 당장 대답을 원했던 것도아닌데......"

"일수씨......참 좋은 사람 같아요.
우리 그냥 친구해요....."


일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만다.
역시 일수의 가슴 속 어느 한 부분을
채웠던 불안감이 맞아 떨어지고 말았다.
거부하는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일수를 더 힘들게 하는건
그녀의 매정한 뼈아픈 말과 표정 들이였다.
도저히....당신은 아니라는 .........


그녀와 헤어지고
일수는 부산역으로 향했다.
그녀의 대해 아는것도 많지 않은 그였지만,
잊지 못할 그녀였고, 왠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을
그녀였는데........
아무런 준비 없는 그녀에겐 일수의 말과 행동이
너무 엉뚱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얼마나 수많은 존재 속에서
빛을 발하는 무언가를 찾는것과 같을텐데...
빛처럼 발하는 사랑은
아름다운 영혼을 그리워 하며
다시 만나는 곳의 해질녘의 석양빛 일텐데....

그녀에게 일수의 존재는
얼마나 많은 삶 속에서 또 다른 향기로
되돌아 올까...........

밤기차를 타고 오는 서울행 밤빛과 함께.....
기차 창가엔 빗물이 내리고 있었다.
일수의 쓰라린 가슴 한 구석 눈물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