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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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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BY 장미정 2000-11-07



1989년 일수의 군입대.........

아버지의 자리란,
있으면서도 크게 차지 하는 부분이 적은 듯 싶지만,
막상 비워져 있음 그 공간 만큼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리였다.
더더욱 아들에게는.........

일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를 결심했다.
아버지만 곁에 계셔 주신다면
등을 토닥거려 주며, 잘 다녀오라고
해줄 분이거늘
일수는 입대 전, 아버지를 찾아 뵙기 위해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슴을 사무치게 파고들 그 무언가가
10여년의 세월을 들여 그 곳을 찾아가는
일수의 마음은 하나의 수수께기나 다름 없었다.

어쩜, 더 철들기 전,
아버지를 좀더 이해하고, 수용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본적도 없는 낯선 곳이지만,
그 곳에 가면 언제나 그립기만 한 아버지가
있지 않은가.....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아버지가 계신 서귀포시로 향했다.
고속 버스는 시내와 해변도로를 연이어 달리며
일수의 마음을 조금씩 조여준듯 했다.

아버지와 약속한 작은 호텔 앞,
청색 점퍼를 걸치고,
옷을 이리저리 털고 나오는 그는
분명, 아버지였다.
가까이 다가와 일수의 어깨를 살짝 잡으며

"왔구나......"

"네........근데, 어디서 일하세요?"

"아...니 그....냥 그냥 일해..."

일수는 호텔를 올려다 보며,

"여기서 일하세요?"

"그려...."

"어떤 일 하시는데요?"

"그냥....변전실에서...."

"지하 변전실 말이에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였다.
10년전 기세등등한 모습을 어디서든 찾아 볼수가
없었다.
세월이 아버지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어 버린거였다.

"집에 가서 밥이나 먹자꾸나,
오느라, 챙겨 먹지도 못햇을텐데...."

"여기서 가까워요?"

"그려......저 골목만 돌아가면 있어."

아버지의 재촉에 갔던 집은
판잣집 보다 조금 나아보인다 하면 충분할 정도였다.
왜 이런데서 사는지 일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주도를 도망갈 당시,
아버지 혼자 생활할 자금은
가져 갔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일수네 식구는 모두 힘들었다고
그렇게 알고 살았는데,
아버지의 지금 모습은 일수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으로 비춰졌다.

은희엄마....
아버지와 바람나 도망간 그 여자....
일수 앞에 서 있었다.
입은 떨어 지지 않고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왔어? 들어와....."
투명한 말투였다.
무언가 알수 없는 불만이 잔뜩 끼어 있었다.

"야.....밥 안먹은께.
상 좀 차려라.."

"알았구만요.
뭐 반찬 이라고 내놓을 만게 있어야 말이지.....
정신 산만해 죽겠구만
뭐가 아쉬워 여기까지 왔는지원....."

좁은 집이라,
부엌에서 주절대는 그녀의 말은
일수 귀에 못이 박히듯 찔려 왔다.

아버지는 일수의 눈치라도 보듯
"신경쓰지 마라.."

"아버지....."

"왜?"

"우리 나가요..제가 모시고 갈데가 있는데..."

"어딜?"

"가보시면 알아요"

일수는 아버지와 집을 나오기 위해
현관에 쭈구리고 앉아 신발을 신었다.

그녀는 갑자기 생기가 도는 듯한 얼굴로
"왜 갈려구?"

"네.....오늘 안으로 서울 가야돼요."

"그랴......그럼 잘가거라..."

일수는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였다.
아버지와 동네 골목을 빠져 나오며
일수는 아버지를 쳐다 보았다.

"왜 이러고 사세요?"

"................"

"이렇게 라도 같이 살고 싶었어요?"

"할말이 없구나......"

"지금 아버지 모습 얼마나 추한지 아세요?"
그렇게 떠나 가셨으면 보란듯이 잘 사셔야죠!
네? 이게 뭐에요?"

"일수야........."

일수는 흥분한 감정을 가라 앉히며

"죄송해요....괜히 집엘 가서.......
가지 말걸 그랬나봐요..."

순간 눈물이 나올듯
눈 주위가 파르르 떨렸다.
일수는 고개 돌려 아버지가 눈치 못채게 손으로
언저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일수는 아버지를 모시고
큰 횟집으로 향했다.

"여기 제주도는 갈치회가 유명하다면서요?"

"그려....."

"오늘 저랑 한 잔해요."

"그려...일수야...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내가 가봐야 하는데 명목이 없구나..."

일수는 말없이 술잔을 기울었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것과 다름없다.
일수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 해야하지만,
늘 부담스러워 했던 건 사실이다.

"저.....아버지.."

"왜?"

"저.....군에 가요.."

"그래? 벌써 그렇게 됐구나."

"아버지........
서울 식구들 보고 싶지 않으세요?"

".............."

"전.....아버지의....."

일수는 아버지의 품이 그리웠노라 말을 채 잇지도
못한채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일수야........
힘든 말은 하려 들지 마라.
아껴두자꾸나.
아껴 둘 줄도 알아야 하는거다.
내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모든걸 잠시 묻어두고
다녀오너라,
낯선 곳의 생활이라 처음엔 힘들텐데,
넌 잘해 내리라 이 아버지는 믿는다."

미래는 뻔한 것이 결코 아니였다.
낯선 곳에서 아침은 늘 외로웠다.
하지만, 흥분과 긴장이 있는 곳,
그 곳에서 일수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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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
가난 때문에 상고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작은 섬유회사에 취직을 해야만 했다.
일수는 은아를 만날 수가 없었다.
아니......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준비못한 미안함이 앞섰는지도 모른다.
10년이 넘도록 늘 곁에서 "친구"가 되어준
그녀였다.

수백통의 편지가 오가고,
서로의 생활을 빤히 들여다 보듯
매주마다 편지가 오고갔다.

근에 가기전 마지막 편지를 그녀에게 보냈다.


사랑하는 은아에게.......

은아야!

벌써 가을이구나 생각했는데, 겨울이 와버렸구나.

당연히 잘 지내고 있겠지?

내가 널 알면서 얻은 깨달음은

힘든 삶속에 잃어버린 흔적들이 있다면,

또 다른 무언가가 그 흔적을 메워줄 수 있다는 거였어.

무슨 말인지 알지?

어디를 가든 외롭지 않을거야.

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 나 군에 간다.

만나고 가고 싶지만,

글쎄, 그냥 조용히 갔다올께.

이렇게 가버렸다고 미워하지는 마라.

2년 6개월 이다.

기다려 달라는 말? 훗....

자신이 없네... 행복해라....그리고, 사랑한다.

난 널 너무나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1989년 11월에....사랑하는 일수가 너에게...



은아가 이 편지를 받을쯤,
일수는 훈련소에서 4주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아껴둔 여자였다.
사랑하기에, 고이 간직해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여자........

변화란, 살아 있는 것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변화는 것이였다.
일수는 그걸 미쳐 깨닫지도 못한채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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