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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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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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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BY 낙서쟁이 2000-11-20


이야기 [열 셋]... 새로운 감정.

정확하게 아침 8시에 인터폰이 울렸다.

"좋은 아침! 잘 잤어요? 김민재입니다.?"
"후후.. 네 안녕하세요?"
"다리는 좀 어때요?"
"네. 조금 낳은 거 같아요."
"지금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후후. 아니요. 10분 아니.. 15분 후에요."
"그래요."

어젯밤 잠들기 전 오랜 시간 김민재를 둘러싼 혼란스러운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늦잠을 잔 명은이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딩동....

문을 열자 김민재의 얼굴보다. 장미꽃 한아름이 먼저 보였다.

"이렇게 일찍 어떻게 꽃을 구했어요?"
"하하. 아파트 정원에서 슬쩍 했습니다."
"하하."
"잘 잤어요? 괜찮습니까? 아프지 않고요?"
"네. 괜찮아요. 잘 잤고요."

이른 아침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방문을 받은 명은이 주춤 거리
며 어색해 할 때, 민재가 손가락 두어 개로 명은의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려주었다.

"비누 냄새가 참 좋아요."

쑥스러움에 고개를 숙여 외면한 명은이 커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픈데 혼자 두고 가며 걱정 많이 했습니다."
"괜한 걱정 드렸네요. 괜찮았어요."

명은이 등을 보인 채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 명은씨 처음 본 순간부터, 아니 메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
아한거 같은데요."
"......"

명은은 자신의 가슴속 무엇인가로부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오
래전에 닫아 두었던 마음속 창문 고리의 울림 이였을까? 이성이 안쪽
에서 문고리를 단단히 잡고 있고, 감성이 밖에서 노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등뒤에 서 있는 이남자가 그 창문을 열고 들어
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민재가 명은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가볍게 떨고 있는 명은을 느
낄 수 있었다. 민재가 명은을 돌려세워 가볍게 키스를 했다. 주춤하며
피하려 했던 명은의 입술이 화한 치약 냄새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차렷하고 있던 팔을 올려 민재의 목을 살며시 감았다. 그러자
명은을 안은 민재의 팔에 힘이 주어졌다.

입맞춤.... 명은의 입이 열리고 타액이 민재의 것과 섞였다. 더 이상
그 안에 공기도 둘의 타액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 얼마나 신선한가? 얼마나 새로운가? 이 아침. 이 작은 공간에,
어느 날 바람처럼 다가온 이 사람과 내가 키스를 나두다니....] 명은에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민재가 요구했다면 그 이상도 이루어 졌을
것이다. 아니 명은 스스로 옷을 벗었을 지도 몰랐다.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배고프죠?"
"..."
"내가 빵을 좀 사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좀 전에 나눈 뜨거운 키스로 서로 어색했다.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키스의 감미로움만이 가득했다.

"운전 할 수 있겠어요?"
"글쎄요. 어제보다는 한결 낳은 데, 운전은 잘 모르겠어요. 좀 해
보고 안되면, 여기서 강의 준비 좀 하며 쉬다 내일 저녁에나 올라가면
될꺼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네."
"운전을 못 했으면 좋겠는데요."
"네?"
"후후.. 그래야 명은씨 올라가지 않죠."
"후후.."
"오늘 어디 돌아다니기에는 다리에 무리가 있으니까. 우리 영화 볼
레요?"
"무슨 영화요??"
"명은씨 심심할텐데 내가 잠시 벗 해드려야죠. 명화이고, VIP 자리
에서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영화 어떴습니까?"
"심심하긴요. 전 괜찮아요."
"하하.. 혹시 비디오기 있나요? 비디오 테이프 여러개 빌려다 보자는
거였어요."
"하하.."

명은은 지금도 그날 아침 민재와 본 비디오가 무슨 영화였는지. 몇
개를 봤는지. 누가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민재가 둘러준 팔에 안겨 있었고, 민재가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는 기억밖에. 그리고 엄마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한 아이들에게서 많
이 좋아 졌지만 운전하기에는 힘들어 못 올라가겠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민재를 의식해 목소리를 낮추었었다는 기억밖에....

명은에게 문단속 잘 하고, 식사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남기며 민
재가 돌아갔었다. 한동안 민재의 부재를 확인하며 명은의 마음이 어
수선했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승빈과 아이들에게 못 올라가 다시 한번 미안하
다고 잘 자라는 전화를 해주었다.

맥주를 꺼냈다. 목구멍을 넘어가며 시원했던 액체가 위장에서 뜨거
워지고 있었다. 민재가 떠올랐다. 새로운 감정이었다. [이래도 되나?]
하는 반문도 해보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결론과 도리질 치며
지워버린 민재의 얼굴이 어느새 유리창안에 머물기를 반복하는 자석
같이 쏠리는 마음이었다.

캔 맥주 두개를 비워갈 때 벨이 울렸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누구세요?"
"접니다. 김민재."
"잠시만요."

편안하게 속옷 차림이던 명은이 것 옷을 걸치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문을 열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너무 늦었죠? 들어가도 되나요?"
"...."
"나 명은씨와 친구 하려고 했는데, 내 감정이 친구 이상인 거 같아
요. 괜찮은가요?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같은 감정이었다니. 들킬까 조심스러웠던 아니, 벌써 다 들켜버린
감정을 민재도 가지고 있었다니..... 저 남자도 지난밤 나처럼 혼란스
러웠을까?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 걸까? 어쩌자고?]

복잡한 생각을 읽히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피하며 명은이 맥주를
권했다.

"맥주를 마시던 중이였어요. 하나 드릴까요?"

민재에게 맥주를 건네고 창 밖을 응시했다.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민재의 마음을 알고
나니 뭔가 야릇한 기분이 들면서 또 다른 두려움이 어둠처럼 밀려 들
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는 명은의 마음을 민
재가 읽었는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뒤에서 안아왔다. 명은은 움직
을 수 없었다.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명은은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