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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純情)제1회..
예전 같으면 당연히 그랬던일....
무심코 지나치는 사소한 어떤것이..
한때는 너무도 사랑했던 소중한 것 이었을땐
눈물이 난다.
뒤를 돌아보니 슬퍼한 시간의 길이 만큼
버려진 행복들이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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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울해 보이는 남자....
내가 그를 첨 만나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99년 4월 어느 날. 봄과 함께 그는 내게 찾아 왔다.
우울해 보이는 남자....
내가 그를 처음 만나 느낀 첫 인상 이었다.
그래서 인지 그는 남달리 타인의 시선을 끄는 카리스마가
있는 듯 했다.
하긴, 그 카리스마가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우리 사이도
없었을 것이다.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그....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모처럼 만의 모임이었다.
나는 장소를 옮길 때까지도 그가 합석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막상 그 자리에서 그와 만났을 땐 어딘지 모를 어색함을
감추려고 더욱더 그에게 접근하려 들었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접근한 것이 아닌 단순히 그 자리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기 위함이었다고 표현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내 성격이 워낙 활달한 편이라 누군가와 어색한 분위기는
잘 견디지 못함이었다고설명해야 빠를지도 모른다.
"인사해. 우리 1년 후배 이규용 이라는 놈이다.
얘는 경아라구 아는 동생이구...."
"안녕하세요...."
재영 오빠의 소개에 우린 가벼운 목례와 동시에 인사를
나눴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바보 같은 모습....
술자리가 무르익고 있을 무렵, 난 그를 돌아봤다.
벌써 1시간째 사이다 잔만을앞에 두고 옆 사람들의
술 취한 넋두리를 받아주고만 있을 뿐,
전혀 이야기에 끼어 들려고 하지도,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그가 궁금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그는 술자리에서
적극적이지 못했다.
'뭐 하는 사람일까?'
말끔히 차려입은 양복 사이로 여자의 손길이 전혀
가지 않은 서투른 넥타이가눈에 띄었다.
순간, 재영 오빠의 말이 기억났다.
그와 인사를 나누기 전에 재영이 내게 한 말이었다.
"유부남이니까, 기대는 하지 마라~"
농담 섞인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외치는 순간이었다.
'기대는 무슨....'
난 그의 빈 음료수 잔에 음료수를 가득 따라주며
말을 걸었다.
"술 한잔하세요. 그러고 있으니까 제가 보기에 좀
미안하네요. 저희만 재밌게 노는 것 같아서...."
"아닙니다. 전 운전을 해야 되잖아요. 조금 후에
주차 시킬만한 장소로 가면 또 모를까.."
그의 거절이 무척 냉정하게 느껴져서인지,
내 웃는 표정이 금방 사라졌다.
'가정적인 남자 같다....'
그의 냉정이 어느새 그의 와이프에 대한 부러움으로
바뀌는 순간임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런 술자리에서 권하는 술을 마다할 의지력을
가진 남자라면 책임감 또한 강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아홉 살이나 어린 처녀가 권하는 술잔을 말이다.
"2차 가자. 노래방 어때?"
누군가의 제안에 우린 쉽게 동요 됐고,
결국 노래방으로 가게 되었다.
형광색 조명이 자질구레하게 늘어선 노래방엔
입구에서부터 지하실 느낌과 비슷한 어두운 냄새가 났다.
관찰하듯 들어서는 나에게 여 종업원이 먼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그녀의 옷차림과 화장을 봐서는 이곳은 단순한 노래방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딱 달라붙는 스커트 뒤로 팬티자국이 굵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우리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맥주 갔다 드려요?"
그녀가 주문을 받고 나가자 모두들 노래를 신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만, 그만 빼 놓고는....
모두들 노래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그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넸다.
"노래라도 좀 하세요."
이렇게 맥주며, 노래를 권하는 나 자신이 싸구려 술집
창부같이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럴까.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그는 나의 말에 전혀 관심 없는 듯 노래방에서 부른
콜 걸 하고만 즐기기에 바빴다.
웃으며 춤추고 그 여자가 권하는 술만 입에 대는
그를 보며 나는 무너져버린 내 자존심을주워 담기에
바빴다.
그렇게 술자리는 새벽을 넘겨도 끝이 날 줄 몰랐다.
가지 말라는 친구 현지와 나를 붙잡는 재영을 말리며
우릴 보내 준 사람은 바로 규용씨 그 사람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그리고 1주일 후쯤이었다.
하나언니와의 약속 때문에 나는 또 다시 재영과
그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볼일을 다 보고 할 일도 없어지자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콜택시를 부르려 했다.
그때 재영오빠와 세호오빠가 가겠다는 나를 만류하며
막아섰다.
"왜?"
"우리가 소주를 한잔씩 했거든. 근데 저 아래 검문소에서
음주 단속을 하나봐. 옆에 여자가 타고 있으면 검문을
않해서 그러는데, 30분만 있다가 같이 가자. 태워줄게."
"태워줄게? 그게 태워주는 거야? 마음에서 비롯된
호의가 아니잖아."
말은 그렇게 했어도 거절하진 않았다.
그리고 우린 무사히 검문을 피할 수 있었다.
"야~ 난 무면헌데 잡히면 큰일날 뻔했다. 어쨌든 여기
근처서 우리끼리 소주나 한잔하자."
재영의 술병이 또 돋았다. 우린 가까운 소주방에
들어섰다.
"탕 시키자. 마른안주 먹기 싫다."
얼큰한 대구탕에 곁들여 마시는 싸한 소주한잔....
술맛을 알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하겠지만 그 당시 나는
여자로써는 대단한 애주가였다.
"야! 현지 불러라. 현지있음 재밌잖아."
"오빠가 직접해."
그가 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나오라는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자마자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응? 못 온다고 전화 하는거 아냐? 여보세요....
어, 그래.....일루 와라. 여기가 어디냐면..."
"왜? 장소 잊어먹어서 전화했데?"
"아니, 규용이 알지? 왜 저번에 봤잖아. 걔한테 전화
온거야. 뭐, 저번에 한번 봤으니까 합석해도 상관없지?"
"그거야....뭐."
그를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유부남 노땅을 만나서 뭐 좋다구....'
속으로 한편으론 심통도 났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술잔을 한두번 비우면 비울수록 머릿속이 몽롱해져 왔다.
급기야 숨조차 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는
자리를 일어섰다.
"괜찮니? 너 오늘따라 좀 빨리 취한 것 같다."
"바람 좀 쐬면 나을거야. 나갔다 올게."
소주방 뒷문을 열자 밤바람이 서늘하게 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
긴 한숨이었다.
그 한숨과 동시에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조금 드는 듯 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과정을 꽤 하고서야 나는
자리를 일어설 정신이 들었다.
취한 것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소주방엘 들어서자, 어느새 현지와 규용씨
그 사람이 와있었다.
"왔어?"
"경아, 취했니?"
염려스런 말투로 인사를 대신하는 현지에게 나는 그저
웃음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네."
웬일로 그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그런 인사가 그리 기분 나쁘지만은 않았다.
"술 좀 드셨나 보네요."
미소까지 보이며 내게 말을 거는 그를 보며 마음속으론
어떤....뭐랄까, 성취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 즈음, 일행은 항상 그랬듯 또다시
노래방 타령이었다.
"그래. 가자. 가!"
"오늘은 어디로 갈래?"
두 번째 들어선 노래방은 지은 지 얼마 안되는 건물로
먼저 간 곳보다 훨씬 세련되고
분위기도 좋았다.
적어도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반기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야! 선곡해라. 여기 맥주 좀 줘요."
그리고....나는 싸구려 영화를 찍듯이 필름이 끊겼다가
들어오곤 했다. 그날따라 술이 빨리취한 모양이었다.
다만 한가지 명백히 기억나는 건.....
그는 부르는 노래마다 슬프고 애절한 이별의 노래만을
불렀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인지 즐거운 노래도
섞어가며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 그의 행동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서 느낀 첫 이상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선곡하고 차례를 기다리며
천천히 그를 관찰했다.
그리고 가끔 끊겨 지는 필름 사이로 명백히 기억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며 세상모르는 사람처럼 웃고 떠들 때
그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아가씨, 너무 귀여워서 그러는데 뽀뽀한번 해도 되겠
습니까?"
엉뚱한 그의 부탁이었다.
술에 취해서 였는지, 난 그저 웃기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가 내게 성큼 다가와 내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제정신이었다면 아마 그의 뺨을 세차게 때렸을 게
분명하지만 그땐 그의 그런 관심이 기분 좋은
아침햇살처럼 느껴졌다.
정말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오늘 우리 집에 가자. 아무도 없으니까...."
누군가의 말에 나는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따라가게
되었다. 옆에 있던 현지가 조금 지친 듯 힘이 빠진 내게
걱정스런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경아, 괜찮아? 또 답답하니?"
"아니....조금.....바람 쐬면 나아져."
차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제치고 그가 말을
꺼냈다.
"경아씨 좀 어때요? 아, 이거 속도를 좀 내야 겠는 걸?"
그의 차가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가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어딘지, 누구의 집인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술 취한 나를 잠시 맡길
뿐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나서며 계단을 밟고 아파트로 향했다.
나는 내 옆에서 나를 부축하던 현지에게 물었다.
"여기 누구 집이니?"
"몰랐니? 여기 그 사람 집이야.... 재영오빠 후배."
아련히 들리는 그 대답에 나는 그녀가 이끄는 데로 힘없이
발을 옮겼다.
거실로 들어서서 소파에 기댄 체 잠시 머릴 식히고
있을 때 누군가 먼저 말을 꺼냈다.
"경아 오늘따라 약한 모습이다?"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여기까지 따라왔지?'
혼자서 자문자답 하고있는 동안 세호오빠가 슈퍼에서
술을 더 사왔다.
이 자리를 이대로 끝내기엔 아마도 좀 아쉬운
모양이었다.
"와~ 그만 마시자. 무슨 술고래들도 아닌데 너무 하다."
그의 말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새벽을 넘어섰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시각이 새벽3시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린 남자들 여자들 각각 따로 잠을 잤다.
현지와 나는 거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불을 끄고 누운 상태에서 바라본 그의 집 거실은
아담 하지만 깨끗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벽에 걸린 가족 사진들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