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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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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상자


BY self 2000-12-05

내가 507호 남자를 내 기억속에서 꺼집어 낸 곳은 잊어 버리고 싶은 어린시절의 상자에서다.

"이성철.."
나의 어린시절...

그는 우리들의 불행한 세계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세계는 20년도 훨씬 지난 세월속에 묻혀 지냈다.

참으로 넓어도 보이는 강을 앞에두고 위풍당당 하기까지한--
위엄을 갖춘 산들을 뒤로 둔체, 우리는 마을의 군락을 이루고 살았다.
마을 입구엔 국민학교와 공동 샘을 두고서...

우리 마을은 석재 광산촌이다.
아버지는 화약기술자였다.
마을엔 두집이 광산을 운영하는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한 집이 우리집이다..
소설에 나오는 빨간 벽돌 이층집도 유일하게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어느날 우리집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광산의 사고로 인부 둘이 죽었다.
아버지는 그 책임을 져야했고,그 댓가로 감옥살이를 했다.
넘어진데 또 누군가 밟고 지나가듯이 가정은 불행으로 연속되었다.
아버지가 가정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나의 어머니는 시들시들 병으로 몇년을 끌다가
돌아가시고 그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도 1년이 채 안되어 돌아 가셨다.
외동딸이였던 나는, 어느날 형제 한명 없는 고아가 되었다.
성철...
그와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다..
우리 광산에서 죽은 인부 중 한명이 그의 아버지였다..
그 사건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남편 살려내라며 울며불며 우리집에 와서 난리를 피울때..
뒤에서 눈물을 고이며 말없이 나를 쳐다 보던 그였다.
엄마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그 현실의 공포속에서 지금도 그 눈을 잊을수 없다.
그 이후 파란만장한 내 삶에 대해서는 잊고 싶다....
그 후 간혹 들려온 소문은 성철이란 아이가 대구시에서 뒷 골목의 보스가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불행한 환경이 되어서 그가 어두운 길로 접어 들은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가 어떻게 이곳..부산으로 흘러 들었는지 모르지만 ...인연치고는 묘한 인연이였다...
507호 남자는 잊고 싶은 나의 과거를 꺼집어 내는 촉매가 되었다..
그로 인해 또 다시 끊어졌던 내 과거의 끈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안정 되어가는 내 생활이 어지러워 지기 시작했다..

"띵똥!!"
문밖에서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아무 소리가 없었다..

"누구세요...."

"저 ...507호 입니다."

순간, 숨이 막혀 오는것을 느꼈다.

(그가 나를 알아 봤을까?)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그와 얼굴이 맞대이자 죄 지은 사람이 형사를 보듯이 나도 모르게 한발 뒤로 물러났다.
애써..내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을 스스로 심으며..당당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색한 몸놀림을 숨길수가 없었다.

"우리집에 차한잔 하러 오시겠어요..."
그는 웃으며 말하면서도 내가 너무 당황하는 빛을 보이자 겸염쩍어 했다.
당당한 체구와 잘 생긴 외모가 아무도 그의 불행한 과거를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것 같았다.

" 예 "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보다...)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506호 분도 오시라 하고...이웃끼리.."

내 기억에 잠시 잊혀졌던 506호 남자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무얼하고 있을까?)

그때 그는 어색함의 공간을 깨려는듯 돌아서서 가면서...

"미현이....맞죠?"

순간 큰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듯 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현관문을 잡았다.

"아!...맞구나...."

그는 순간 뒤돌아 다가서면서 엉거주춤 서있는 내 손을 덮석 잡다가 놓았다...

"혹시 아닐까 해서..실수 할까봐..너무 반가워.."

다행스럽게도 그가 나에게 적대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것 같아 안심했다..

"너..나 알겠어...나 성철이야..."
"나 ..알지?"

"예..."


나는 마치 방금 안 것 처럼 했다"


"우리 어린시절 이야기도 하고...자주 함께 하자..
정말 세상 좁구나..."
그는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 여러 말 들을 했다.
그뒤 무슨 대화가 오갔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성철오빠..나중에 갈께요.."

"그래 .."

그는 손을 흔들며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이제 506호의 강과 507호의 강의 물 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강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애독해 주시는 독자님께..
개인 사정으로 오랫만에 글을 올렸습니다....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