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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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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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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가


BY self 2000-10-1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내 모습을 찾기에 바빴다.
거울을 바라보니 밤새 나 자신을 스스로 조그마한 공간에 가두어 버린 것을 느꼈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내 모습은 분명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506호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나도 다른 인생을 살아 가고 싶어져서 가계도 처분했다..
앞으로는 내가 무얼 해야할지 아직까지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집 옆 금정산 약수터에 가기로 했다.
오늘이 두번째다...

하루에도 몇번씩 컴퓨터 e메일을 확인했지만 COSMOS 아이디 남자는 오지 않았다..
습관이란 참 묘한것이다...
날마다 통신상에서 만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연락을 끊은 후
알수 없는 고독이 나를 엄습했다...
대상없는 욕망을 가진 사실을 알았을땐, 이미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날수 없게 되어 버렸다..

나의 마음이 그래서인지 옆집 506호 남자도 어느날부터 나에게 싸늘하게 대하는것 같았고..
또 다른 주위 사람들도 나를 자꾸만 피하는듯한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이 잔뜩 찌푸렸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의 생활 리듬을 바꾸기 위해서 오늘 새벽도 금정산 약수터를 가려고 마음먹었다.
하루 갔는데 비가 올려고 하니....

(" 이런날도 가야지..." )
("우산을 가지고 갈까...약수터에 무슨 우산?..")

부석부석하고 지친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큰 피티병 2개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때,503호 부부가 등에 생수통을 매달고 나왔다...
나는 한번 픽 웃었다.
(내가 늘 이시간에 퇴근을 했지...
그 부인은 나를 힐끗 보며 이내 눈을 피했다.

"안녕하세요?"

"아...예..."

"산에 가실거예요?"

"예.."

"저...같이 가도 될까...요?

나는 말끝을 흐렸다...그 부인이 나를 싫어 하는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내가 애써 은둔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에 살던 그 남자가 죽은것은
절대 내 탓이 아니다.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그런 마음이 들어서

"아주머니 저 함께 가도 될까요?"

"뭐...그러던지...."

그 부인도 말끝을 흐렸다.
승강기를 내려 가는동안 그 남자는 연신 말을 했다.

"앞으로 우리 계속 같이 약수터에 갑시다..이웃끼리 얼마나 좋습니까?"
그 부인은 남편을 쳐다보며 옆구리를 쿡 찔렀다.

"산에 가십니까? 어...505호 아가씨도 약수터에 갑니까?"

수위 아저씨가 애써 잠을 깨우는듯한 눈으로 말했다.

"예 ..아저씨..물떠와서 아저씨 좀 드릴께요..."

"아예..감사합니다...갔다와요..근데 비가 올것 같은데.."
약수터에 반쯤 올라가는데..참지 못한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아..505호 아가씨.. 이럴 어쩌나...비가와서..."
그때 생수통 베낭속에서 두부부가 비옷을 내고 있었다...

"이 비옷 드릴까요?"

"아저씨는?"

"아...비좀 맞죠 뭐..."

옆에 있던 그 부인이 인상을 썼다.

"아니예요...전 집에 갈래요...다녀 오세요.."

집으로 오는동안 흠뻑 비를 맞았다.

"505아가씨..비가 와서 약수터 못 갔구나..."

"중간에 저만 왔어요..."

"아 ..참..아가씨..옆집 506호 누가 있던가요? 몇일째 안보이는것 같아서..."

이른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기억이 났다..

"있던것 같던데요..."

"여기 ..소포 좀 갔다 줄래요?"

이것 전해주고 나도 이웃과 가까이 지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받아 들었다.
(그 남자가 자기자신을 내가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예..주세요"

책인것 같았다..

승강기 안에서 그 소포를 보고 나는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것 같았다.

('세상에...

[받는사람:아이디:COSMO@KOR.NET]

그럼....옆집 506남자가 바로 그 COSMOS란 말인가?...")

거의 쓰러질것 같아 중심을 잡기가 힘이 들었다..

나와 그를 만나게 해준 사이버상의 우연은 나에게 행운이라 생각했지만,
이제 현실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지속성에 경악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바로 옆집의 남자가 그 라니..."
(그는 나를 알고 있을까?... chaos의 아이디를 가진사람이 나 라는것을....)

내가 얼마나 그에게 길들여진 습관에서 벗어나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는가?
가게도 그만두고 이제 두번째 약수터에 가서 한번은 중도에 돌아 왔지만....

506호 문앞까지 갔지만 도저히 초인종을 누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앞에 그 소포를 살며시 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지금 -----
나를 떠난것 같았던 고독이 나와 마주하고 앉았다..
고독의 가치는 바로 인간이 주의력을 더 잘 기울일 수 있게 해준다고 했던가?
나는 벽을 사이에 두고 그의 존재와 마주하고 있다..
그도 똑같이 나 정도의 주의력을 기울여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