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088

1694 아이디를 가진 남자


BY self 2000-10-05


1694 아이디를 가진 남자—월요일


바깥출입을 안하고 방구석에만 쳐박힌지 일주일이 되었다.
한 주 내내 영선은 자기 남편을 면회 가자고 졸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관심가지는 자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분명 자기 남편보다 내가 보고 싶을 것이다.
적어도 면회 가는 동안은 나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녀가 내게 보내는 사랑을 알고, 나또한 그녀를 사랑하지만 애써 무관심한 척 노력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규범과 인간의 도리를 내세우지만, 우리의 세계는 의리를 가장 큰 미덕으로 내세운다.
나는 춘배와의 의리 때문에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춘배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에게 짊어진 십자가이다.
내가 면회를 갈 때마다 그는 자기 아내를 부탁했다.

“형님! 그년 이 혹 딴 놈과 놀아난다면 응당 의 처분을 할 것입니다.
형님.. 꼭 좀 보살펴 주세요.…”

어쩌면 그는 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 모른다.
그녀의 미묘한 감정을 그도 읽고 있는지 모른다.
영선은 아직 한번도 혼자 춘배를 면회 간적이 없다.
그녀는 처음부터 춘배를 사랑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여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되었는지 알수없지만, 그와 어울리지 않게 빼어난 미모를 하고 있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여자 탤랜트 누구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의 아이디 1694는 춘배의 감방 번호다.
그 당시 왜 그 아이디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 인생에 춘배는 끊을 수 없는 운명 인게 분명하다.
나는 가끔 영선과 함께 사는 꿈을 꾼다.
그와 산다는 것은 가정을 가지고 그녀가 주는 아침밥을 먹고 눈을 뜨면 그녀가 내곁에 같이 누워 있다는 것이다.
5층엔 혼자 사는 사람이 여럿 있다.
506호 남자도 그렇고 505호 여자도 그렇다.
나도 혼자 살고 늙은 노총각인줄 알지만,호적만 총각이지 7명의 여자와 동거를 했다.
나는 두목은 J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다.
모두가 아는 이 조직에서 3번째 서열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춘배에게 명동에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이 있어
" 손 좀 보라"고 했더니,
춘배 녀석 충성심이 지나쳐 그의 손을 베어 버리고 말았다.
이 사건이 기사화되면서 사회 문제가 되어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고 대대적 범죄조직 소탕령이 내려졌다.
춘배는 끝까지 충성심을 보이면서 혼자 죄를 덮어 쓰고 내 이름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J두목은 나에게 7000만원을 주면서 잠시 부산에 숨어 지내라고 했다. 다른 조직원도 뿔뿔이 흩어졌다.
한동안 고생을 하면 여러 여자들에게 더부살이를 하다 이곳으로 왔다.

그사이 동거한 여자가 7명이나 되었다.
이제 여러 백화점에 매장도 두고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춘배가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의 아내를 보살펴 달라는 것이다.

영선은 연산동에 작은 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왔다. 적은 아파트도 하나 사주고.. 어느 놈팽이가 와서 그녀를 괴롭히면 전화만 하면 총알같이 달려가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나에게 정이 들었던지 항상 나를 찾았다.
시계를 보니 그녀와 만날 시간이 가까워 졌다.

나는 되도록 이면 수수하고 간단한 옷을 입었다. 춘배가 사회 생각이 들 나도록 하기위한 배려이다.
영선이도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게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려는 순간, 컴퓨터 이 메일 도착 소식이 왔다.
터키에서 온 오뱌르 선교사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클릭해 내용을 보니 보내준 현금에 감사의 표시다.

[“한번도 얼굴을 뵙지 못한 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당신에게 충만하기를...
보내주신 선교 헌금을 너무나 감사하게 잘 받았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이 하나님을 위한 저의 사업에 도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필연이란 생각이 듭니다.
형제님께서 주신 현금은 저에게 얼마나 유용하며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과 그곳의 세세하게 일어난 일과 그의 가족이야기도 했다.
참으로 세상은 모순 덩어리며 우연의 연속이다.
세상에 손가락질 받는 범죄 조직의 일원이며, 폭력을 밥 먹듯이 일삼는, 하나님이라고는 이세상에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내가 그에게 선교헌금을 보내다니....

어느날 e- 메일이 왔는데, 터키에서 왔다. 그 편지는 세계를 돌아다니다 잘못온 편지다.
그 메일은 터키당국이 알면 그는 매우 위험한 사항이 되는데, 비밀리 국내 목사에게 띄운 것이 나에게 배달된 것이다. 이 메일이 늦게 도착은 해도 배달 사고는 극히 드문 일인데 ..
정말 그의 말마 따나 하나님의 뜻인지...
터키는 회교국이기 때문에 이방의 종교를 배척했다. 더구나 한국사람을 더욱더 싫어했다.
대부분 다른 서방나라는 터키 정부자체에서부터 막기 때문에 전도만 하고 떠나가지만 한국은 그곳에 교회를 세우기 때문에 추방했다.
그래서 그는 위장으로 무료 컴퓨터 사업을 하면서 전도활동을 한다.
결혼하여 아이까지 한명 있는 그는 돈이 부족해 매우 힘든 상태였는데, 국내 연고가 있는 교회에 선교헌금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나에게 온 것이다.
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선교사업은 나와 무관하지만,그의 아내와 자녀를 굶길 수 없었다. 그런 인연의 끈이 일년 반이나 연결됐다. 오늘도 나가는 길에 얼마간의 돈을 부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관 문을 열자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문처럼 찍 거리는 쇠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한걸음 걷다 506호 문을 봤다.
그는 항상 정확하다.
9시면 정확하게 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저녁11시에는 집으로 들어왔다.
도시는 이웃의 아무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규칙적인 것이 이탈할 때는 못 견디게 궁금해 하는 습성이 있다. 정확하게 오는 지하철이 1분만 늦어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듯...
그 남자는 전형적인 선생 타입이다 검은 뿔태안경 때문인지 분명 나보다 나이가 적은 것 같지만 내가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미 때문에 비슷한 연령으로 보일 꺼라 생각된다.
규칙적인 그를 보면 그가 새끼줄을 타는 사나이로 생각된다.
이상을 향해 험한 길을 걸어가는….
세상의 모든 악을 밥 먹듯이 하며 산 나는, 어떤 때는 그가 부럽다.
올바른 삶을 살며, 인간으로 지녀야 할 모든 착한 성품을 다 가진 것 같이 보였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한번쯤은 착한 사람이 되 보고 싶을 때가 한번쯤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승강기 속에서 먼저 5층을 눌리며 5층에 가시죠? 라고 말했다.
그의 눈은 선한 모습은 다 담고 있었다. 그는 보는 사람마다 인사를 한다.
언젠가 503호 여자가 김치도 담궈 주었다.
사람이란, 참 유치한 존재다. “혼자 사는데 김치는 담궈 먹겠어요? 라면 먹는데 김치라도…”
나도 혼자 사는데, 503호 여자가 그런 말을 하며 506호 남자에게 김치를 주었을 때 은근히 질투가 났었다.
그의 방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자주 들렸다.
나도 약간은 아는 곡도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