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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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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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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smos의 아이디를 가진 남자(1)


BY self 2000-10-03


COSMOS의 아이디를 가진 남자


엘리베이터 속에 들어서자 더위는 절정에 달하는 것 같다.
머리카락 속에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땀은 신발 속 발바닥이 질퍽할 정도로 등줄기,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내 손수건도 이제 땀을 흡수하기를 거절했다.

(요즘 승강기는 냉방장치가 다 되어 있던데.....).

복도에 들어서자 이 더위를 두려워하듯 문들이 잠겨있다.
복도에는 누군가의 신발에 밟힌 껌 자국 하나가 반들거리고 있다.
504호 문이 삐줌히 열려있고 그 안에는 아이를 나무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문이 확 열리며 꼬마 아이가 뛰어나왔다.

“안녕하세요..”

“ 응…영석이…”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언제나 저럼 그 아이는 활달했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하며 후다닥 달려나갔다.
너무나 통통 튀는 생기가 주위를 둘러싼 더위를 한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 뒤를 물기를 다 증발한 듯한 머리를 한 여자가 손에 빗자루를 들고 따라 나왔다.

“이놈의 자식...” 영석아, 어…안녕하세요..”

겸염쩍은 듯 여자는 빗자루를 몸 뒤로 감추었다. 순간 쳐다본 그 여자의 목에 파란 힘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얼마나 고함을 질렀는지….흔적을 남기려는 듯…

“아..예에”

거의 인사하는 자세로 구부려 505호 까지 왔다. 어쩐 일인지 뒤통수를 아이 엄마가 보고 있는 듯해 뒤돌아보니 그 여자는 쑥스러운지 씩, 한번 웃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505호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고 있을까....)
나는 고개를 한번 저으며 506호인 내 문을 열었다.
처음, 내가 이 빌라에 왔을 때 ,매우 흡족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인, 학원이 가깝고, 그것보다, 비록 남향은 아니지만, 동쪽 창은 동래 지하철이 보이고, 서쪽베란다가 있는 쪽은 금정 산이 보인다.

어느날 밤인가 나는 동쪽 창을 보며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을 밤새 지켜본 적도 있다.
밝은 불빛의 창들이 꼬리를 물고 내 달리고 난후, 지하철 안에 있던, 여러 잔상들이 펴져 흩어진다. 동래는 지상으로 열차가 다니고,다음 역인 교대 역부터는 지하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밤낮없이 나는 서쪽 베란다에 서 있다.
집착의 꼬리를 달고 날마다 베란다에 서 있는 것이다.
나의 고통은 이 베란다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

심한 두통으로 문에 들어서자마자 신발을 신은 체 침대로 향해 한참을 잤다.
잠결에, 창문 쪽에서 흙 냄새가 났던 기억이 났는데, 창 밖의 금정 산엔 비온 후 보여지는 뿌연 안개구름들이 산등성을 타고 다녔다.
열어둔 베란다 창문으로 안개의 기운이 아까 그 무덥던 기후의 기억을 씻어 버렸다.
베란다 끝에 섰다. 베란다 바닥이 빗물에 젖어 있다.

(나는 여기서 세상을 보지만, 세상으로 나갈 수는 없다.)

옆 베란다 창문 소리가 났다.

(그녀가...)
나는 가슴이 가볍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그러나 내 마음은 온통 그곳을 향하여 있는 것을 나는 안다...

(그녀가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그녀의 샌들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 소리는 천박함을 담고 있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곁눈으로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끈 사시를 한 배꼽 티인 것 같다.
어쩐지 분노가 치밀어 힘을 주어 문을 닫았다.
샤시 문이 반동을 받아 도로 조금 열렸다.

나의 등줄기가 무거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