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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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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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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BY 이나래 2000-10-08

그가 온 다음날부터 비는 멎었다. 그는 계속 서울에 남아서

모든 정리가 끝날때까지 서울에 있었고,남편은 장마가 완전히

걷힌 후에야 왔다.

"얼마나 심각했던 거야? 지금 봐선 별루 모르겠네.아뭏든 고생

많이 했겠네. 신대리가 도와줬지?"

"당신한테 난 뭐야? 우리 부부아냐?난 당신의 아내야, 가게가

물에 잠겨 가는데, 내가 당신 찾는거 당연한거 아니냐구? 올

수 없다구? 내가 물에 떠내려가두 당신 못온다구 했을까? 저

가게는 바로 나잖아."

"왜 억지야. 나 놀러 갔던거 아니잖아. 중요한 상담이 있었어

당신 그런거 이해 못하는 사람 아니잖아.그리구 내가 온다구

비가 멎는건 아니잖아. 하늘이 하는걸 내가 어쩌겠어. 당신 힘

들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상황이 어쩔수 없이 그랬던 거니깐

당신이 이해해. 그리구, 신대리가 도와줄꺼라 생각했기 땜에

조금 안심은 했었어. 신대리, 그 사람 당신한테 각별하잖아"

"이건 우리집 일이야. 당신은 가장이구, 신대리는 동료일 뿐이

야. 난 당신이 당연히 와 줄꺼라구 생각했었어. 올 수 없다는

당신 대답듣구 얼마나 기막혔는지 알아? 물은 점점 차 오르구

나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해 봤냐구?"

"..신대리, 안 왔었냐?"

"그 사람 서울에 없어. "

"그럼 그걸 혼자서 다 정리했단 말이니?"

"왔었어. 당신은 올수 없다는 나한테 그 사람은 연락도 안 했

는데 뉴스보고 달려 왔대. 길두 여기저기 막혔는데도 용케 와

갔구,며칠 동안 다 정리해주구 갔어. 나 혼자서 이걸 어떻게

정리했겠어, 무섭구 기막혀서 손이 발발 떨리는데."

"아뭏든 수고 했겠구만,당신이야 솔직히 내가 오는거 보다는

더 좋았을꺼 아냐?"

"무슨 소리야?"

"...됐어. 고생한 사람한테 만나자마자...실언했어."

"당신, 왜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 실언 했다는데, 당신 발끈할꺼 없잖아.모른척 하겠다는데..

나, 바보 쪼다 아니다.신대리하구 단순한 직장 동료, 선후배

사이로만 그렇게 지낼 수 있니?"

"우리가, 당신 보기에 어떻게 지내는데?"

"...됐다.당신한테 내가 뭘 제대루 해 줬다구 따지구 큰소리

칠 수있겠냐. 알아서 잘 처신하기만 바라는 거지."

얼만큼, 어느정도루 짐작하고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

었지만, 전혀 생소리는 아니므로 슬며시 외면하고 방을 나왔

다. 내 마음이 변한건 사실이니까, 내 가슴속에 그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점점 커지는것도 사실이니까. 모든 정리를 끝내고

그가 다시 대구로 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남편이 출장을 간다

고 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섭섭해 하는 날 느낀것도 사실이

니까................



"어! 손 이리 줘 봐요. 왜 안끼구 있어요? 안 맞아요?"

"안 맞아서 안끼는거 아니야. 끼고 싶지 않아서 , 그래서

안 끼는거야."

"왜요?"

"........................"

"그걸 내가 어떻게 끼겠어. 그 반지가 무슨 의미 인줄 뻔히 아

는데, 그 반지를 끼구, 그걸 보면서 니가 없는거 인정하구 나

두 너처럼 너 없이 사는거 연습하라구? 그러라구? 나두 그래

야 되는거야? 무조건 니 맘대루?"

"............그래요.난 혼자서, 더구나 낯선 곳에서 선배가

보고 싶을 때마다 반지를 만지며 내 마음을 달랬어요. 선배가

고른거니까, 선배도 나랑 똑같은 걸 선배 손에 끼구 있겠구나,

오직 선배랑 똑같은걸 끼고 있다는 생각만이 내 기쁨이었다구

요.그런 위안이라두 있어야 하잖아요. 아무말도 못하고, 이렇

게 덜렁 나 혼자서 내려 가야만 하는, 선배를 떠나려고 했던

내 마음, 그걸 결정하기까지 나 얼마나 힘 들었다구요. 선배

는 나 없어두 살 수있는거 같은데, 난 날이 갈수록 선배하구

같이 있는 시간만 기다려지구, 만나면 헤어지기 싫구, 그런 내

마음을 알면 선배가 날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래서 다시는 나

안 만나 준다구 할까봐, 티 안내구 감정 들키지 않으려구 무지

하게 노력했는데, 만날수록 선배한테 내 마음을 말하고 싶어지

잖아요. .....안 되잖아요.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나.

......나쁜놈이죠? 그래서 결심한거예요. 대구 내려가서 처음

에 나 무지 후회한거 알아요? 그냥 티 내지말구 욕심내지 말

구, 그냥 선배옆에 있을껄, 내가 말 안하면 아무것두 모르는

선배니까 내 마음 감추고 그냥 옆에만 있을껄 하구말이예요.

그러다가 결정했어요. 영장나와서 군대간다 생각하기루요. 군

대 간 셈치구 이년만 참아보구 그 때 가서 다시 생각하기루

마음 먹구 반지 사 갖구 간거라구요. 반지 어딨어요?"

"가게 서랍 속에 계속 있었어.그 때, 너 가게 왔을 때 나, 속

으로 서랍속에 넣어둔 반지 걱정하구 있을 때였어."

"내가 껴 드려두 되요?"

"그러구 싶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런거는 이 담에

정말 사랑하는 여자, 너랑 영원히 함께 할 수있는 여자, 그런

여자친구한테 해주는거야."

"선배! 하게 해줘요. 해 주구 싶어요. 의미같은거 따지지마

요. 그냥 내가 해 주고 싶은 사람한테, 해 주고 싶을 때 하면

되는거예요."

"그럼, 여기 있어"

매장 정리며, 청소를 얼추 마치고 내일은 그도 내려가야 한

다기에 술을 마시러 가는 길에 그 때까지 서랍속에 넣어두었던

반지를 어째야하나 하고 가방에 넣어갔었다. 몇 시간 후면 그

를 다시 보내야한다. 그는 아직도 내 마음도 저와 같음을 모르

고 있는데, 저 혼자만 저렇게 안타까와 하는데, 내 마음을 말

해야하나, 어쩌는게 좋을까는 술이 취하기 전에 하던 생각이

였고, 그도 나도 약간씩은 취했으므로 난 말을 해 버렸다.

"너 그렇게 없어지구, 나는 어땠을꺼 같애? 너하구 지낸 일

년이 그저 단순한 선후배나 친구같은 마음 뿐이었을까? 바보

야,내마음, 조금은 보였지? 그래, 나두 너 좋아해. 아주 많

이. 회사 입사해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난 너 좋았어, 근데,

니가 나 아줌마라구 디립다 털털거리구,그래두 속으로 밉지

않았어. 뭐, 아줌마인거 사실이니까. 난 파트너가 내 맘에 들

어서 일하는것두 신났었구. 그 무렵 나. 남편하구 사이 많

이 안좋을 때였어.내가 무슨 일이든지 하지 않으면 참고 견

디며 살아내기 힘들 만큼 최악이였어.그랬기 땜에 난 제일 힘

든 부서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던거고,그래서 죽기살기로

일에만 매달린거야. 일 할때만 잊을 수있고, 일 하고 있을 때

만 내가 살아 있는거 같았으니까. 사춘기 이 후로 또다시 죽

고 싶단 생각 매달고 살아간 때도 그때고. 너 힘들고 외롭게

자란 만큼, 아니 더보다 훨씬 더많이 나도 힘들고, 외롭고,

또 많이 울면서 자랐어.그렇다고 내 가족들이 눈치를 주거나

구박하거나 그랬던 적도 없는데, 스스로 주눅들고 기죽어 지

냈던거야.나 대학가서 미팅 한 번도 안했어. 공부하는것과 알

바외에는 나머지는 나한테 다 사치라고 여기면서, 빨리 졸업

해서 취직하는게 내 대학 사년 동안 유일한 목표였었어. 마침

졸업하면서 바로 취직이 되었고, 거기서 지금 남편을 만났던

거고,일 년쯤 사귀다 결혼한거야. 결혼하고 처음에 내가 얼마

나 행복해 하면서 살았는지, 내가 느꼈던 행복은 다른 사람과

는 다른 의미였어.모든게 다 내꺼라는 포만감. 밥통도, 장??

도, 화장대도, 심지어는 쓰레기통조차도 완전히 내꺼라는 사실

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어.난 남편한테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

고,내 가정을 위해서 내 꿈이라든가, 나 개인은 버리고, 오직

남편과 아이들만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함께 산지 십년이

되어가는데, 그가 날 배신한거야.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는

지, 왜 나는 내꺼 가지구두 행복하면 안 되는건지, 뭐하러 태

어나서 평생 엄마 가슴에 상처주구 가족들 힘들게 했는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젠 남편조차도 나를 배신하는구나.

무슨 상처가 아직도 모자라서 남편까지 내게 상처를 보태 주

는걸까? 나더러 이 세상에 살아있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 그래

그럼 죽어주자. 나 없는 세상에서 남은 모든 사람들 다 행복

하게 살아라, 하고 죽으려고 했는데,내 아이들을 어떻게 해?

내 사랑스러운 내 분신들을 어떻게 하느냐구. 그래서 나 여태

살구 있어.그러다가 너를 만난거야. 나 지금 어떤 기분인줄

알아? 나 행복한데, 나 너땜에 무지 행복한데, 나는 행복하면

안되는 사람이잖아, 그치? 그러니까 너두 나 떠난 거잖아,

그래. 가구 싶으면 가. 다 가두돼. 아주 안 와두 돼. 이 세상

에 내 앞으로 배당된 행복은 애초부터 없었어. 그러니까 가질

수 없는, 가져서는 안되는, 그런 너만 나 좋아하잖아. 욕심

내잖아. 어쩌면 그렇게도 철저하게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들

만 내 몫인지 모르겠어. 너, 모르지? 너 떠나고 내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내 남편 날더러 차갑구 모질다구, 그래서 무

섭구 질린다구 그러는데, 너두 내가 그렇게 차가운 여자라구

생각하니? 아니지? 나, 아니야, 그런 여자. 그런데, 나 내일

부터 또 너 없이 살아야되니? 이 반지만 들여다 보면서? 나,

너랑 함께 지냈던 지난 일 년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너, 모르잖아. 나쁘다. 너, 정말 나쁘다."

"선배,술 많이 취했어요. 나, 슬픈 얘기 싫어하는데, 선배가

하는 얘기라서 참구 들은거라구요. 담엔 절대루 안 들어 줄

꺼예요. 그리구,나 지금 속으로 무지 신나하는거, 알아요?

선배한테 고백하구 혼날줄 알았는데, 선배마음두 다 얘기 해주

구, 술 취해서 그런거 아니죠? 그럼, 나 앞으로 맘 푹 놓구

선배 생각하면서 살아두 되는거지? 그럼, 나 지금 뭐 해두 되

요?"

"뭐 하구 싶은데? 하구 싶은거 있음 해. 오늘은 다 들어줄께.

께."

자리를 옮겨 내 옆으로 앉더니, 입술이 다가왔다. 차갑고

메마른 입술의 느낌이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난 많은 갈등

을 했다.마음은 팔을 벌려 그를 안고 싶었지만, 내 손은 그를

밀쳐내고 말았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이런건줄 알았으면, 못하게 했

을꺼야. 이건, 이건 이담에 여자친구한테나 하는거야. 난, 아

냐."

그의 눈이 보고 싶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그렁그렁

아무것도 선명하지가 않았다. 나두 니 입술 받구 싶어. 나두

너랑 키스하는게 왜 싫겠니, 그렇지만 그런거는 안되잖니,

왜 안 되냐구? 잊었니? 너 모르니? 내가 어떻게해서 태어난

아이란걸? 키스하면 그다음엔 안구 싶어지잖아. 우리두 남들

처럼 그런 관계루 남구싶니? 남편이 바람 폈다구 짐승 취급

하던 내가, 나두 똑같은 인간이 되라구? 그건 아냐, 그건 정

말 싫다.

"미안해요. 화 내지 마세요."

"화, 안내. 그치만 담에 또 그러면 다신 너, 안 본다. 우린

그러면 안되잖아. 마음만 갖고 안 된다면, 정말로 너, 대구

내려가서 다신 여기 오지마. 오늘은 너두 나두 취했으니깐,

술핑계루 넘어가는거다."

미안해, 미안해.너 하구 싶은데루 못하게하는 날 이해할 수

있지? 니가, 나 사랑해 주는거 내가 고마와 하구 있는거, 너,

알지?----- 떠나는 그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꾹꾹 참

았다.

아무것도 어떻게 해줄수 없는 내가 너무 화가 났다. 감정이

가는데로,마음이 움직이는데로,하고 싶은데로 다 해 주지 못하

는 내 지금의 위치가 원망스럽다.우린 왜 만났을까? 넌 왜 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는거니?

반지만 손에 남긴 채, 서로의 마음만 확인하고 그는 또 다시

갔다. 서로 만나지 않는, 잊혀지는 연습을 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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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어느새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으려고 하는데, 난 반

대로 자꾸만 옷을 껴 입으려고만 하는걸 보니, 가을이 깊어

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