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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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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난바보다누구보다 2000-10-08

이번엔 쫌 길어요,,, 지루해 하지 마시길....


사실 나, 이런 거 싫어.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다른 사람처럼 결혼하고 애 낳고 아내와 자식을 위해 일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 그랬는데..., 이제 윤아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좋지?
나는 그와 살고 싶다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간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 첫사랑은 왜 이렇게 절절한 것일까. 차라리 시작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금 나는 아침 방송을 보고 있다. 어떤 여자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 서른이 넘은 여자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가정을 포기하고 싶기까지 하다고. 다섯 살 난 딸아이 그리고 남편, 결혼이란 제도 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와 살고 싶다고. 어쩌면 좋으냐고. 이웃집 준호 엄마의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에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애를 버리고 다른 남자랑 살려고 생각할 수가 있지,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게요, 정말 미쳤나 봐요.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나를 향해 중얼거리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사랑이 아닐 거라고 중얼거려본다. 이건 사랑이 아닐 거야.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남편이 그 얘기를 꺼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주해 친구 성준이 삼촌인데 요 앞에서 만났던 것뿐이에요, 하고 거짓말을 하지도 여보,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지도 않는다. 그저 가만히 그래요, 맞아요. 했을 뿐.
아까 그 남자 누구야?
남편이 물었을 때 나는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젠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충 거짓말로 넘겨도 남편은 날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니 의심을 한다해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미안한 얘긴데, 나 다 알아버렸어.
남편은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다 태우고 들어 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전에 없이 활기 찬 모습에 기분이 좋았어. 처음엔 그래, 그저 잠깐 슈퍼에 갔겠거니 생각했어. 당신과 함께 점심이나 하자고 전화를 걸면 늘 받지 않았거든. 낮잠을 자는 모양이다, 이웃집에 놀러간 모양이다, 청소를 하고 있어서 벨 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다... 여러 번 아무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어. 근데..., 봤던 거야, 나는. 일찍 퇴근해 들어오는데 지나가는 차. 그 안에 당신을 본 거야. 왠 젊은 남자 곁에 앉아 있는 당신을 언뜻 본 거야. 의심하지 않았어. 그런 일로 의심하진 않았어. 당신은 아주 행복해 보이더군. 나와 결혼할 때도 짓지 않던 미소를 그에게 보이며 얼른 아파트로 들어가더군. 나는 조금 있다가 올라갔지. 당신은, 당신은 말야, 태연히 빨래를 개키고 있었어. 내가 물었지. 당신 요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그 때까지도 난 당신을 믿고 있었단 말야. 다른 여자는 몰라도 당신은 아니라고. 다른 남자 곁에 타고 있는 걸 보았으면서도 난 당신을 믿었는데 말야... ...
남편은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에게 할 말 없어? 변명해도 좋아. 해 봐.
남편은 시선을 재떨이로 향한 채 말을 했다. 차라리 남편이 내 뺨을 때리고 내 머리칼을 쥐어뜯어 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변명할 거.., 없어요.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그대로예요.
나는 담담히 내가 말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차분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건지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로 침착하게 말을 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당신, 아니라고 말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어떻게, 어떻게...
남편의 목소리에 눈물이 배어 났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아까부터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담배를 태우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이제서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도 울고 있었다. 남편에게 들킨 게 슬퍼서였는지 이제 어떻게든 끝날 이 사랑의 게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우는 남편을 보아서였는지 어쨌든 우리는 슬프게 울었다. 서로 등을 돌린 채. 한참을.
자고 있던 주해가 깨어 나 우리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주해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낮에 주해를 데려다 재워놓고 그를 만나러 갔었다. 딸아이를 집에 가둬둔 채 남자를 만나러 갔다 온 것이다. 남편에게 이렇게 들킬 거 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