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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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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난바보다누구보다 2000-09-14


넌 그 얘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나는 오랜 친구인 지숙에게 그 얘기를 했다.
불가능 할 건 없지, 그래 네가 뭐라 그랬어?
나는 그녀에게 모든 얘기를 해주었다. 그와의 첫만남부터 그가 내게 혹시 유부녀와 총각과의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왔던 것까지. 하지만 난 더 이상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웃고 말았지, 뭐.
지숙에게 그런 얘기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우리에게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하고 말했단 것까진.
좋겠다, 얘. 기분이 어때? 서른 넘어서 남자친구 사귀는 기분이?
나는 남자친구는 무슨 남자친구, 하고는 빨래 삶고 있는데 넘친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벌써 열 한시였다.
그에게 전화가 올 시간, 열 한시.

당신,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
일찍 들어온 남편으로 인해 나는 그와의 데이트를 서둘러 끝내고 들어 와 빨래를 개키고 있던 중이었다. 뜨끔했지만 태연한 척 왜요? 했다.
그냥, 기분이 좋아 보여. 보기 좋아.
나도 느낀다. 결혼하고 요즘처럼 기분이 좋기는 처음이다. 아니 살면서 처음이 아닌가 싶다. 대학 때 만난 남편을 사랑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남편은 나를 많이 아껴주고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남편과의 신혼 시절에 이처럼 기쁜 적이 있었던가.
그냥 요새 기분이 좋네요. 당신은 안 그래요?
나는 빨래를 들고 일어서며 물었다.
당신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아져. 사실 결혼하고 당신에게 잘해준 게 없어서 너무 미안했었어. 특히나 집에서 집안일 하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마음이 아프곤 했어. 근데 요즘 당신 보니까 회사일 힘든 것도 모르겠어.
나는 웃으며 빨래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와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짜릿하고 신나고 애틋한 내 인생의 첫사랑이라며 저 착한 남자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순간적인 미안함에 마음이 쓰라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내일 오전 열 한시를 기다리고 있음을. 일찍 들어 온 남편을 원망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