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화장대 위에는 나무로 정성스럽게 깎인 십자가가 있었다.
그와 얘기를 할 때면 난 화장대 위에 팔을 고으고 앉아
십자가를 보며 그를 맞곤 했었다.
오랜 시간 그 곳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그 십자가는
언제나 그랬듯 그곳에 있었다. 그처럼..
가위 눌림을 당할 때면 난 그 십자가를 보려 애쓰다 일어난다.
그렇기에 난 더욱 나무 십지가에 애착이 있었다.
그런 행동들이 미신이라도 좋았다.
날 항상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 싫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개학이 다가왔다.
학교에선 시간을 더 늘려 보충수업을 했고 11시가 되어서야
학교 정문을 나올 수 있었다.
매일매일 똑 같은 시간에 일어나 어제 했던 일들을 반복하고
똑 같은 시간에 지친 몸을 침대에 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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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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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기분 나쁜 아침 이었다.
날씨는 소나기라도 퍼 부을 듯 우중충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엄마 역시 과외선생 얘기로 나를 언짢게 했다.
과외 같은 거 필요없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한 10분 쯤의 여유를 내어 항상 그렇듯 화장대 앞에 앉아
그와 얘기를 했다.
오늘은 영 기분이 안좋다는 등등의 그런 얘기...
기도를 마치고 벽에 있는 십자가를 보았다.
약간 삐뚤어진 듯해 보여 바로 고쳐 달았다.
아마 일하는 할머니가 청소하다 건드렸나보다.
삐뚤어져 있는 물건들, 제자리에 놓여있지않은
물건들 보면 난 짜증이 난다.
집을 나서려는 데 할머니한테 무어라 하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
자식두고 남의 집살이하는 노인네가 안 되어 보이기도 했고, 가뜩이나 기분 좋지 않은 날 남에게 싫은 소리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태어나 이렇게 기분나쁜 날은 처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난 여느때처럼 등교했다.
수업이 끝나고 저녁식사 시간쯤일까....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불길한 일이 집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은
날 결국 집으로 오게 만들고야 말았다.
집은 멀쩡해 보였다.
깨끗이 정리되어있는 내 방도 별 이상이 없는 듯 했다.
단, 내 온 몸의 신경이 화장대 쪽으로 쏠리는 느낌은 제외하곤..
몸을 돌렸다.
어-억...
아침 등교전 내가 다시 달아 놓았던 십자가...
우리 집엔 이럴 사람이 없다. 절대...
.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허공에 달린 듯 보이는 죽음의 역 십자가.
난 무서움에 떨려오는 손으로 십자가로 손을 뻗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나의 십자가..
그러나, 곧 이전의 반듯한 나무십자가로 되돌아가 있었다.
아냐.. 내가 헛것을 본 것일게야.
난 오늘 아침처럼 그 것을 곱게 제자리에 똑바로 걸었다.
보충수업하러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생각 했다.
오늘 집에오면 영양제 한병 맞아야 겠다고...
보충수업이 끝나고 난 친구들과 단어장을 들고
묻고 답하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이 그믐 날이었던가?
오늘도 하루가 다 갔군 생각하며 집에 왔다.
방문을 열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아까 걸었던 십자가를
올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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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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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 - 아 - 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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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의 그 역십자가는
아니, 나의 십자가는...
색색의 무당 옷을 입고 있었다.
의식을 잃어가면서 난 들을 수 있었다.
무당의 신 부름소리와 칼 치는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