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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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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거짓의 사랑


BY 로미(송민선) 2000-06-13

그렇게 떠나야 한다고 정말 생각 했다면,난 학교에 남

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도,난 대학원에 등록하고,조교자리를 신청했다.

그 땐, 단지 그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을 순 없다고,내

가 피해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고 큰 소리 쳤지만,사실은

학교로 돌아올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적어도 표면적으론 나는 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고,조교일을 하고,공부를 더하려고 욕심

낸 만큼 노력했다. 내 처지에 대학원까지 욕심낸다는 건 사실

무리였기에 학비와 용돈은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 조급했다.상처에 딱지가 앉고,그 딱지가

자연스레 떨어져서 새살이 나오길 기다려야 했는데,성급히 딱지

를 떼어버려서 상처를 덧나게 하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랑은 지독한 연상작용이었다.

비슷한 옷,비슷한 신발,같이 갔던 곳,말투,그가 남긴 모든 것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와 가슴을 헤집고 다녔다.

심지어,대화를 나누는 중에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의 담배냄새,

그리고 술 냄새가 섞인 그 불쾌한 냄새까지도 그를 생각나게 해

서 치를 떨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와 사투를 벌이던 중 그들이 돌아왔다.

태경을 비롯한 몇몇의 남학생들은 아저씨처럼 살이 붙고,더 철

들은 모습으로 돌아와 후배들과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성진도 있었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처럼 아무렇지도 않음

을 가장하여 대하곤 했지만,어쩌다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나를

성진은 고통스러워했다.

-그래,고통스럽겠지...

너를 더 고통스럽게 해주지...

애증은,사랑의 바로 뒷얼굴이란 걸 그 땐 몰랐다.


어떤 방법의 복수를 그렸었던 걸까.그런 구상은 없었지만,엉뚱

하고도 유치한 복수의 날은 내가 생각지 않은 방향에서 왔다.

나보다 한 살 밖엔 어리지 않은 그러나 엄연히 후배인 한 친구

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이미 동아리라 불려지던 써클후배였는데,집이 같은 방향

이라서 몇 번 같이 차를 타게 된 우연 때문이었는지,나를 잘 따

랐다. 배고프다고 조르기도 했고,여자친구 문제로 상의를 해오

기도 했으며,늦은 밤 귀가할 땐 같은 방향이라고 꼭꼭 나를 챙

겨주었다. 다들,믿음직한 동생이 생겨서 좋겠다고 했지만,어렴

풋이 그의 눈길에 담긴 의미를 알 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받

아들이고 싶지 않았고,그의 맘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해 왔었다.


어느 비 오던 날 오후 조교 사무실로 정우는 나를 찾아왔다.

"웬일이야?니가 여길?"

"응,,비도 오는데 선배, 우산 갖구 왔나 해서?없으면 같이 갈려

구. 그래도 우린 같은 동네사는 동지잖아."

"자식,의리있네...근데 너 애인한테나 가봐.난 아직 멀었어.할

일이 남았거든."

"뭐 나도 할일 없는데,여기서 기다리지 뭐. 어이 ~조교님,커피

나 한잔 주시지요."

"니가 타 먹어 임마... 바쁘다니깐"

"씨,선배,비오는 날 데리러 온 기사한테 정말 이러기야?"

"놀구있네,너 같은 기사가 어딨냐. 됐다 싶다."

"정말?"

"그래. 가봐,일하게"

그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

다. 태경과 몇몇 복학생친구들,거기에 성진도 보였다.

"어,무슨 일이야? 누구야? 얜,첨 보는데?"

태경은 눈짓만으로 정우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전 얘가 아니구 경진이 애인입니다."

"경진이 애인? 경진이 한테 내가 모르는 애인이 있었나?"

"무슨 일들인데?"

대답대신 날카롭게 내가 물었다.

"리포터,내러왔어."

다른 친구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들은 자릴 떴

다. 경진아,,잘해봐..이런 말을 남기고.

어색하게 서 있던 사람은 나와 태경과 그리고 성진.정우 뿐이었다.

"가봐 들. 여기다 놓구."

돌아앉으며 내가 말했다.

"아,실례.난 경진이 서방인데,애인이 생긴 줄은 몰랐네..참 여

편네하곤...인사나 나눕시다. 난 김태경이유."

"전 이정우입니다.기계과죠"

"경진아. 나 좀 보자."

더 이상의 참을 성 없이,성진이 말문을 열었다.

"리포터 냈으면 다들 가봐"

냉정하게 잘라말하면서,정우를 바라다 봤다.

"나도 문잠그고 가야겠다.정우씨,가자"

"으응,그래. 다들 다음 번에 만나면 제가 술 한잔 사죠."

"경진이,그런 줄 몰랐네..그럼 담에 봅시다"

성진은 더 이상 아무말이 없었지만,태경은 쓰게 말을 했다.


바깥엔 비가 몹시 내리고 있었다.

"선배,난 맞아 죽는 줄 알았다."

"그래 맞아. 너 또 그러면 죽을줄 알아. 담부턴 까불지마"

"누가 애인이야?"

"애인이 어디있어? 까불지 말고,,조용히 해"

"선배,그 사람이지...선배 옛날애인?"

"몰라두 된다."

"선배,아까 하는 거 보니까,,아직 멀었네."

"뭐가?"

"그래도 뭐 괜찮아."

"이 자식이 뭐라는 거야?"

한 대 쥐어 박으려고,손을 올렸다. 정우는 물론 맞지 않았다.그

대로 손목을 돌려 날 잡아 안았다. 그렇지 않아도 잠시 전 일

로 혼란스러웠던 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그를 떼어내

려 저항했지만,정우뒤로 태경과,성진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그러고 싶었다.무슨 가학적 취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그?O다.

-자,너도 지켜보렴.

머리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데도 정우는 내가 잠잠해지자,조

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으여 얘길 했다.

"그래도 괜찮아,난. 너야말로 이제 내게 까불지마. 니가 그렇

게 헤메고 다니는 걸 알고 있었어. 안스럽게도.... 이제,내게

로 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아?"

정우의 입술이 다가왔다. 그대로 꼼짝도 않은 채 난 눈을 감았

다.

-그래,보이지. 너한테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 정말 이런 날

이 와줘서 너무나 감사해. 너무나도.

생각만으로도 그 날의 일은 모두에게...너무나도 미안하다.

유치해서 아름다울 수 있는게 젊음이라고 해도,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난 용서할 수기 없다. 그 날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