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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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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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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사라 2000-05-31




내가 사는 동안에도 동구선생의 전횡은 그침이 없었다.

정화조를 푸면 실제비용보다 더 부풀렸고,

멀쩡한 물탱크도 수리해야 한다며 수리비용을 턱없이 걷어갔다.

거기서 나온 중고모터는 주민 동의도 없이 자기 맘대로 팔아먹었고,

업자와 한통속이 되어서 자기 잇속을 채웠다.

어디서 판자대기 몇 개 주워다가 엉성하게 재활용함이라며 만들어 놓고는

반비에서 지출비용을 합법적으로 뚝뚝 떼어갔다.

그는 그런 식으로 수시로, 참 교묘하게도 명분을 만들어 돈을 뜯어갔다.

동구선생의 횡포와 독선은 비단 돈문제 만이 아니었다.

자기맘대로 대청소날을 정하고, 자기 임의대로 반상회를 소집하고,

비협조적이거나 불참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매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소귀에 경읽기라는 이유로,

그저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알면서도 묵인해주고 있었다.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동구선생을 보면

여전히 할머니들은 "선상님 나오셨구만요" 깍듯이 인사를 했고,

젊은 아낙들은 일상적으로 목례를 하며 지나쳤다.

동구선생의 유일한 무기는 어설픈 식자 행세였다.

그는 학식이 많은 사람처럼 스스로 떠벌리고 다녔고,

그의 말투에는 가식적일 정도의 권위의식과 교양미가 배어 있었다.

이따금 지방이나 축문 따위를 써서 나누어주는 것이 그에게서 받는 학문적 수혜의 전부였음에도

그것은 동구선생의 신분을 믿어의심치 않게 하는 혁혁한 공로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에게 동구선생은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과 분위기를 압도해버리는 기교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심지어 그에게서 짙은 사기꾼의 면모가 느껴지기 조차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 야채상 부부가 공교롭게도 동구선생의 바로 위층으로 새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통쾌한 역전극은 주차문제에서 비롯되었다.

동구선생은 꼭 정해진 위치에 자신의 차를 주차시켜 놓고 자기만의 전용공간처럼 융통성 없이 굴었다.

그 자리에 누구라도 주차를 했다가는 막무가내식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다.

변두리 소박한 사람들의 심성은 늘 목소리 큰놈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고,

똥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그냥 그렇게 비켜가고 있었다.

헌데 그날밤, 물정 모르는 이 야채상 부부는

하필이면 동구선생의 그 전용부지에 떠억 일톤 트럭을 세워 놓은 것이다.

왠일인지 그날따라 느즈막한 시간에 귀가를 한 동구선생은 아니나 다를까,

그 트럭을 보는 순간 동네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역성을 내기 시작했다.

---어떤 후레아들놈이 여기다 차를 대놓은겨! 이런 육시럴 인간들,

대체 몇번을 말해야 알아들 먹는겨...당장 나와서 차 빼!

화를 내고 있을 때의 동구선생은 정말이지 이중인격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때였다. 야채상 부부가 나타난 것은.

나는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