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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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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백발마녀 2000-04-04

삐리릭...
아......
한 줄기 강한 빛줄기가 차가운 발가락을 간지럽힌다.

아..함..
음......
아..이런..
..계절탓인가..나이탓인가..
요즈음엔 아침에 일어나는것이 괴롭다.
차가운 방바닥의 냉기가 조금 몸을 움츠리게 한다.
시린 발바닥을 서로 비비며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 재민은
오늘 하루의 무게를 느낀다.


정재민.
나이 30세.
3형제 중 막내.
지방에서 올라와 지금은 신림동 고시촌.
여기 입경한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음..

한 평 남짓한 좁은 방.
얼마전 옮긴 이곳은 그전 고시원보다 비좁고 불편한것이 많다.
차가운 방과 온수가 나오지 않은 세면장.

뜨.드.득..
온몸을 늘이자 여기저기서 뼈들이 늘어나는 소리가 난다.
잠시 멈칫하다 이내 기운을 뺀다.

아...
오늘도..여전히..하루가 ..시작되었군.
음...

어느덧 봄이다.
추운 겨울엔 지금이 고비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봄이 또한 이렇게
복병 노릇을 할 줄이야.
온 몸이 나른하고 도무지 정신집중이 안된다.
한심하다.

나이 서른..
내 형들과 주위의 친구들은 나를 조금 한심한 놈으로 보고
있다는 걸 안다.
그들은 내가 야망이 없다고들 한다.
하긴,
실제로 나는 그리 큰 야망이 없다.

그냥 토실한 엉덩이 주무를 아내와 사랑스런 자식 한 서너명쯤.
조그마한 가게나 운영하며..그렇게 살고싶다.

조그마한 풀잎하나.
가을의 시원한 비 한자락.
탁 트인 대지의 한 숨소리.
그런것이 좋다.



아...
이건 또 뭐야.
...
어..되네..
우와..
그런데..어이구..이건..또..어떻게..해야하는거야..

얼마전 말로만 듣던 컴퓨터의 채팅에 들어갔다.
음..이름이라..
내 본명을 써야 하는걸까..
가만..천.수.연.
아냐..아냐..
가명을 써야지..
음..뭘로..하나.
...그래..

평소 즐겨보던 영화를 생각하며 천수연은 자신의 이름과 아이디를 정했다.
..천.상.

음..이건 또 뭐야..
아이디라..
것도..그냥 천상으로 해야지..
앗..영어로..
heaven?...
그냥 천상을 소리나는 데로 써넣었다.
하..?楹?.

아이구..
막상 들어간 채팅방은 도무지 뭐가 뭔지 어지러웠다.
여기 저기 메시지가 날라오고..
...
일단 여기저기 클릭해 보기로 했다.

우와..들어가네..
내가 쓴 말이 뜬다 떠..
???..

우연히 쓴 말에 대한 대답이 뜬다.

'안녕하세요..천상님..'

'네 안녕하세요'
...누굴까?

'천상님은 아뒤가 특이하군요.'

응?
'..아뒤가 뭐죠..'
'전 오늘 여기가 처음이에요.'
'뭐가 뭔지 통 모르겠군요.'

'..아..저도 잘하는것은 아니지만..'
'궁금한것 있음 물어보세요..'


조금 지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채팅방에는 그다지 신뢰하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를 만난것은
천수연에겐 너무나 행운이었다.
아니, 어쩜 오히려 불행이었는지도..

천수연과 정재민의 만남.
시작이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