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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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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BY 유수진 2000-08-14

"뭐라......"

"해인이와 결혼합니다."

그의 깊은 눈빛에 투영된 잔잔한 호수에 빠진체,
긴 이별뒤 뜬금없이 윙윙 병실을 울리는 소리에도 나는, 멍하니 정신을 놓은체 고요한 정적에 휘말렸다.

"미쳤군!"

엄마의 경악섞인 빈정거림이 고요한 정적을 흔들었다.

그는, 동요없이 잔잔한 깊은 눈빛으로 나를 꼼짝 못하게 붙잡아 맨체, 정식 프로포즈를 해댔다.

"네....
미쳤습니다.
해인이한테...."

엄마의 대꾸없는 얼굴표정이 궁금했지만, 진재오빠의 집요한 눈빛속에서 숨소리조차 숨어버렸다.

다시,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는 목소리....

"허락 안해!
돌아가요!"

"허락...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정신이 '번쩍'났다.

"그......
무슨 뜻이지?"

그제서야, 진재오빠는 시선을 고쳐, 엄마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어머니 허락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방관자였던거, 한번으로 족합니다.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끝도없이 떨어지는
낭떠러지에서 뒷짐만 지고 있지 않을것입니다.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습니다."

"누구 마음데로..."

"해인이와 제 감정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엄만 나를 '홱' 돌아 보시며 따지듯 말했다.

"해인이 너!
그 지경으로.....
가당키나 한 줄 알어?"

난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엄마를 노려보던 눈빛 그대로 진재오빠를 향해 나즈막히 분노를 섞어 중얼거리듯 뇌까렸다.

"누가, 오빠랑 결혼한대요!"

"해인이....
얼마전까지 사랑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수줍게 고개 끄덕였던거, 그거면 됐어.
지금의 니 상황이 도저히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거야. 넌....
나도, 도저히 너를 떠날수가 없다.
동정이라고 냉소해도 할 수 없어.
난......
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오빠가 이런 모습의 날 아직도 사랑한다는거 동정이에요.
잘 생각해 보세요.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 오빠인생 망치지 말구요.

그리고....
오빤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오빠와 함께 하면서 짊어질 죽음같은 고통들은요....
나.....
더이상 비참해지는거 싫어요."

"돌아가....
진재학생.
진재 부모님들과 맞딱뜨릴 난관은 지금의 이애에겐 치명적이야."

"그동안, 어머님과 가족들이 충분히 단련시켜주신줄 알고 있는데요."

엄만 나만큼 놀란 표정이었다.

"진재,
이제보니, 아주 잔인한데가 있는 사람이네.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면서....."

"죄송합니다.

전, 서유림 화백님을 존경해왔습니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는거.....
그리고,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 고통속에서 사는지, 저도 겪어봐서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화백님을 비난할 자격 없습니다.

하지만, 화백님.....
전 화백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지금 가장 상처받았을 어린 불구의 딸을 걱정하시는 모습을 한번도 뵌적이 없습니다.
오직, 옥살이를 하게된 해빈이를 걱정하며 상처받은 딸을 더욱 아프게 질책하는 모습만 뵈었을 뿐입니다.

한 여자로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평생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 여린 딸을......
어머닌, 어머니의 명성으로 짓누르고, 어둡고 캄캄한 터널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래요. 누구도 어머니를 비난할 자격은 없습니다.
저도 한때 육체의 불구를 정신의 불구로, 장애를 가진 형을 창피해했었으니까요.
보기만해도 '울컥'거리게 하는 형의 모양새가 괜히 화가났었습니다.
형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괜한 자격지심으로 벽하나를 세워놓고.....
형이 놀림을 받아도, 병신같이 당하는 형이 미웠습니다...."

'진재오빠....왜 그러는거야....그만해.'
난 이렇게 말해야지 하면서도 선뜻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어머니..."
"그만!"

엄마는 방문쪽으로 걸어가시더니, 이내 '홱'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진재....
버르장머리가 없군....
어디, 어른한테 훈계를 하려들어...."

"어머니와 가족들...
지금이라도 해인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려들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족들의 따뜻하고 진심어린 사랑.
지금, 해인이에겐 그게 가장 절실할 때입니다.

부디, 화백님에 대한 마지막남은 이해심마저 빼앗지 말아 주십시요."

"건방진 소리 그만해!
그래......
진재가 원하는게 해인이와 결혼하는거지.
둘이 결혼을 하든, 같이 살든 맘데로 해!

나, 쟤 이제 포기야....
내가 왜 쟤때문에 생판 남인 진재한테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해.
내가 살아낸 고통들을 뭘 얼마나 안다구.....

쟤, 죽이든 살리든 맘데로 해!"

'쾅-'

엄만 그렇게 가셨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난 몸부림쳤다.

"해인아....."

"가!
가란말야....
왜 이러는거야..왜.....
니가뭔데 이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강하게 제지하는 진재오빠의 큰 손에도 난 온통 뱅글 뱅글 돌정도로 꿈틀거렸다.

그가 미웠다.

비참한 내 자신을 더 확실하게 확인시켜준 그가 경멸 스러웠다.

"싫다고 했잖아.
싫어! 싫어! 싫어!
으흐흐흐흐흐흑....
흐흐흑....흐흐흐흐흑...."

그의 단단한 큰손에 양손을 붙잡힌체 통곡했다.

"해인아....
진정해...."

"으흑 흐흐흐흑.....
난...
물건이 아냐! 알았어?!
나도 생명이 붙어있는 인간이라구....
너희들 다 뭐하는거야.
나 가지고 물건 건네듯이 이리저리 옮겨대는 너희들....
다 죽여버릴거야....
다......
으흐흐흐흐흑...흐흑......"

뺨으로 느껴지는 오빠의 넓은 가슴....
난 얼굴을 온통 오빠의 가슴에 파묻은체,
오빠의 가슴을 적셨다.

"해인아.
사랑해.
우리.....
이제, 시작하자...."

난 대꾸없이 오빠의 촉촉한 가슴속에서 오열하는거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