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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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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주세요


BY 만석 2024-01-23

전화벨이 울려서 폰을 들여다보니 막내딸이다.
"엄마. 바쁘셔요?"
"뭐하느라고 바쁘겠니. 테레비 보고 있다."
"엄마. 요번 금요일에 바쁘세요?"
"엄마가 뭐하느라고 바쁘겠어. 왜?"
"엄마 생신에 날짜 땡겨서 주말에 가려고 했더니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금요일에 가려구요."

어차피 제 날짜에 모이지 못하는 걸 아무 날이면 어떠랴. 지난 주말엔 영감의 생일이어서 모이지를 않았던가. 그러게 모두 바쁜 아이들이고 며칠 상관이니, 영감의 생일케익에 촛불만 더 밝혀서 내 생일까지 이름이나 짓자 했더니,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그리는 안 된다 하더구먼.
"아빠랑 엄마 연세대로 초를 세우려면 150개도 더 꽂아야 하는데요?"하더니 그러면 어때서.
내 말을 들었더라면 벌써 두 늙은이 생일 행사는 지났을 것이고, 지금쯤은 날짜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그러게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 하지 않았던가 말이지.

영감은 그 옛날에 양반댁 귀한 외아드님이니 당연히 음력생일로 올렸겠다. 그러나 일본에서 신교육을 받은 친정아버지의 막내딸인 나는, 양력으로 생일을 올렸더라는 말씀이야. 그래서 영감의 음력생일과 내 양력생일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며칠 상관이 되기가 싶상이더라는 말이지.  요번에도 채 한주일이 되지 않게 벌어지기에 그냥 영감의 생일 케익에 촛불이나 나이대로 밝히고 지나가자 했더니, 그건 말이 안된다나? 숫자에서 밀리니 어쩌겠나. 지는 척 물러나고 말았더니 보라지. 사단이 나는구먼. 주말도 아니니 다 함께 모이려니 천상 저녁에 모이게 생겼구먼. 에라 모르겠다. 단톡방에서 저희들끼리 미리 입을 맞췄을 터이니 내가 이젠 힘이 모자란다.

영감의 생일날 막내아들이 맞은 켠에 앉은 영감에게 폰을 내민다.
"아빠. 이거 아빠 생신 선물이예요." 영감의 폰이 좀 오래 되긴했지. 그래도 지금은 저도 집을 늘려 이사를 했으니 어려울 터인데.  허긴. 해 주고 싶으면 그게 대수겠는가. 그런데 아들내외의 웃음이 의미가 심상치 않더라는 말이야. '그게 아닌가?' 잘 못 짚었나 보구먼.
"에미가 셋째를 가졌어요. 아직 병원에 다녀오지는 않았는데 임신이 확실하네요. ㅎ~ "
"오잉~! 아가가 동생을 봤어? 아이구. 에미야. 축하한다. 이젠 아들도 좋고 딸이라도 좋고."

아들 둘을 둔 막내아들은 딸을 하나 길러보고 싶단다. 하하하.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영감도 기분이 좋은가보다. 막내딸이 딩크부부로 살아서 늘 욕심에 차지 않더니....어느 녀석이라도 채워주려나 보다. 그럴라치면 장남이 중학이 될 때까지 왜 아우를 그리 늦게 보게 했느냐는 말이지. 내 장남이 아들을 하나 뒀으면 싶었는데, 내가 길러주지도 못할 터이니 더 낳으라고도 못하고 외동딸만 두었으니 그게 좀 욕심에 차지 않는다. 그래도 그 외동의 내 손녀는 열 아들 부럽지 않은 외모와 실력이 있다. 지금 그대로만 크면 아마 내 욕심에 걸맞는 한 자리는 반드시 꿰차고 말 걸?!

주말에 생일을 해 먹으면 내 큰며느님이 일이 많다. 정작 며칠 뒤의 제대로의 영감의 생일과 내 생일엔, 시어미가 손수 미역국을 끓여야 한다. 그러니 내 며느리의 고운 심성에 그리 하라고 두겠는가. 그리 말아도 좋겠구먼서도 기어히 며느님은 영감과 내 생일날 아침을 챙기고 만다. 그러니 늙은이들 생일을 해마다 네 번씩을 챙기게 되더라는 말씀이야. 생일날 아침은 그냥 지나가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아니면 내가 미역국이나 끓여 먹겠다 해도, 그럴 땐 고집이 황소고집이로세.
"그냥 두세요. 일 년에 두 번인 걸요." 이건 내 큰아들 녀석의 변이로다.

"어머니.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이건 아침밥을 먹으며, 며느리가 생일이면 언제나 내게 묻는 말이다.
"없어. 없어. 필요한 거 아무 것도 없어. 아, 아범이 밥솥 사다 줘서 잘 쓰고 있잖니."
생일 밥상을 두 번씩이나 받으면서, 뭘 또 바라겠는가. 응?! 생일케익도 또 사왔구먼 ㅉ ㅉ ㅉ.
"늙은이 냄새 날 테지 싶어서 뿌리는 거 뭘 하나 사다 달라고 했더니, 고모가 너무 비싼 걸 사와서 괜히 말했다 싶다. 그냥 싸구려나 하나 사다 달랬더니...." 올해도 아이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그래도 되나? 이래도 되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에미였을까? 부끄러운 맘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