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이는 소식을 하라 했다지. 좀 서운할 때 수저를 놓으라는 말이겠다.
' 그렇지. 할 일도 없는 늙은이가 잘 차려놓은 밥상을 끼고, 눈치도 없이 아그작 아그작 밥만 축내고 앉았으면 참 볼성 사나운 그림이겠다. 그렇지 싶어서 서운한 체로 상을 물리고 나면, 공연히 밥상을 접는 이까지도 밉상이긴 하지.
그러나 남 보기에 좋자고 서운한 밥상을 물렸으니, 다음 끼니 기다리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더라는 말씀이지. 옳거니. 이리 담아도 한 공기이기는 마찬가지라고, 고봉밥을 꾹꾹 눌러놓고 밥을 더 얹어서 낮은 산을 만든다. 우리 집엔 뉘라도 그 고봉밥이 왠말이냐고 탓하는 이는 절대로 없을 텐데도 말씀이야.
그렇게 내 입을 즐겁게 하던 고봉밥은, 말 없이 즐겨 입던 바지며 스커트를 겁도 없이 거부한다.
'어쩌면 좋을꼬? ' 당장에 고봉밥을 마다하고, 산을 트렉터로 깎아내리듯 밥을 줄였다는 말이지. 아직 귀는 밝아 얻어 들은 건 있어서, 단백질도 늙은이가 놓치기 쉬운, 그러나 반드시 필요로 하는 영양소라고 했겠다?!
단백질이라면 괴기를 말하는 것인데, 내 형편이 매일 괴기를 씹을 수가 있더란 말인가. 여기까지 내 글을 읽은 이들은, 내가 말년에 끔찍하게도 살기가 곤궁하게 되었나 보다고 혀를 차는 이도 있겠지. 허긴 두 늙은이 손 놓고 일 없이 마주보고 앉아 있으니, 쉬운 말로 살림이 곤궁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내 일찌기 아이들을 여럿 두어서 먹고 사는 게 그리 곤궁하지는 않다. 정작 어려운 건 두 늙은이의 치아가 말썽이라는 말씀이야. 꼭꼭 씹어 먹는 것보다 대충 씹어서 꿀꺽 삼키는 먹 거리가 효자 중에 효자라는 말씀이지. 대충 씹어도 그 맛을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도 없음이야.
'음~하하. 역시 만석이는 똑똑해.(죄송^^)' 단백질이 육류보다 뒤지지않고, 나만큼 곤궁한 사람이 경제를 걱정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거? 흠하하. 그건 달걀이다. 계란이란 말씀이야. 주워 들은 풍월에 의하면 하루에 한 두 개씩만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단백질은 충분하다 했겠다?!
며칠 전부터 나는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 듯 반드시 계란 반찬을 장만한다. 내 일찍이 요리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터라 결혼을 해서 익힌 솜씨이니, 끽해야 계란후라이나 계란 찜이 고작이다. 아, 계란말이도 혹여 기분이 좋을 때나, 영감이 이쁜짓을 했을 때에는 큰 선심쓰 듯 간혹 상에 올리기는 하지.
영감은 밥상에 계란후라이를 올리면, 밥을 뜨기 전에 계란후라이에 먼저 수저가 간다. 내가 식탁에 앉으려하니 어느새 빈 접씨를 밀어놓는다. 영감은 '옛날 고리적의 양반' 그 자체다. 다섯 누이의 외동 오라버니로 그리고 시어머님의 잘 뻗어나가는 장자 귀동이로 자란 양반이라서, 마누라가 마주 앉기를 기다리는 위인은 아니다.
아무튼 앉아서 계란후라이를 먹기 시작하는데, 그 맛이 좀 요상스럽다. 영감을 건네다보니,
"...." 그렇지? 하는 듯 말은 없어도 의미심장한 표정이다.
"아빠. 후라이 맛이 왜 이래요?"
지금 생각하니 나도 참 우습다. 후라이 맛이 어떻던지간에, 영감이 그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영감의 대답이 더 가관이다.
"달지?"
"아~니. 후라이가 달면 왜 다냐고 물어도 못 봐요?"
"난, 단 거 담았던 접시를 닦지 않고 후라이를 담았나 보다 했지."
"아무튼 물어 봐야지요. '그릇을 씻지도 않고 쓰나봐.' 하고 나무라기라도 했어야지요!"
'뭐 뀐 넘이 성낸다'고 영감을 나무라고는 주방으로 달려가 보니,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구먼. 올리브유의 병과 올리고당의 병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니, 올리브유를 따른다는 게 올리고당을 팬에 부은 게다. 같은 모양의 병에 각각의 이름을 적어 붙이고, 영감에게 병을 들어 보인다. 영감이 말은 없어도 알았다는 듯이 씨~ㄱ 웃는다
참 그렇게도 말하기가 싫은가? 그래도 꼭 해야 할 말은 해야 하지 않는가. 영감은 내가 말을 붙이지 않으면 하루에 두 마디 하면 많이 하는 양반이다. 암만해도 말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지 싶다. 길 건너의 아무게 엄마는 나에게 얼마나 좋으냐고 한다. 말이 너무 많은 것도 힘이 들긴 하겠다. 그녀의 아저씨 별명이 촉새걸랑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