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30분. 나의 게으른 아침 기상시간이다. 이 시간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시작하면, 일러야 9시 30분에나 식탁에 앉게 된다. 출근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시간 맞춰 식사를 할 일이 없다. 잔소리쟁이 아무개 네 영감님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겠다. 그러나 우리 집 영감은 아마 아침밥을 정오에 '자시오'해도 군 말이 없을 위인이다. 애시당초에 그리 늦었던 것은 아니다.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어서, '5분만.' '10분만'하다가 점점 이리도 나태해 진 것이렸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다.
청하지도 않았으나, 영감이 자진해서 아침밥을 짖기 시작했다. 물론 점심과 저녁은 내가 맡는다. 그러니까 아침 잠이 많은 나 대신 아침 잠이 없는 영감이 아침을 지어도 괜찮지 싶어서 말리지 않았더니, 이젠 버릇이 돼버렸다. 백수인 영감을 삼식이로 모시는(?)것은, 내가 무척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는 말씀이야. 그래서 이게 제대로 된 계산인가 싶어서 딸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쌍수를 들어 내 뜻을 환영한다. 딸들 의견을 핑계로 이젠 의당 그러려니 하고 내쳐 게으름을 피운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아침밥을 앉히는 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영감이 자주 병을 얻어 앓더라는 말씀이야.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병이 올만하기는 하다. 영감의 병이라는 게 감기라든지 몸살정도라면 꾀병이라고 하겠으나, 그런 시시한(?) 병이 아니더라는 말씀이야. 대형병원에 입원을 해야 하거나, 자리 펴고 드러누워 화장실 출입까지도 걱정을 해야 하니 아침밥쯤이야 문제련가. 이제는 버릇을 잘 들이고 습관이 될만했으나, 영감이 자주 앓게 되니 그만 좋다가 말았구먼. 내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붙인 꼴이 되었지.
침대에서 식사를 하자 하니 영감 몸이 비틀어져 허리병이 나겠단다. 하여 막내딸아이가 사이드테이블까지 장만을 해 주니, 끼니마다 식사를 날라다 대령을 해야 한다. 이젠 아침밥이 문제가 아니라, 밥은 못 먹어도 영감의 발병이 우선 문제다. 영감도 원래 꾀병을 한다든가 엄살을 잘 부리는 양반은 아니다. 그래서 마누라가 힘이 많이 드는 게 눈에 보이나?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고, 내 손을 덜 쓰게 하려고도 애를 쓴다. 그러나 마음만이지 몸이 마음같이 움직이지를 않는게 내 눈에도 보인다.
두 달의 병 수발을 하고나니, 나도 이제는 좀 일어났으면 싶기도 하다. 허긴. 긴병에 효자가 없다 했지. 석 달째 들어서자 영감은 이제 돐 지난 내 막내손주 녀석처럼, 걸음이 위태롭기는 해도 똑바로 걸으려고 애를 쓴다. 식탁에 나와 앉아 같이 식사도 한다. 그러나, 큰 병원에 입원수속을 해 놓은 건 이제껏 감감 무소식이니.... 애 쓰는 영감에게,
"애 쓰지 말고 들어가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영감은 병원 구경도 못하고 그 길로 지팡이를 버리고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도 양심이 있으니, 집안 일을 도와달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거실에서 걸음마를 하더니, 옥상을 오르내리며 옥상의 살림을 맡아 한다. 강아지 식사며 배변청소, 화분에 물 주기 등, 그 동안 강아지가 부수어 놓은 강아지 집에 망치질도 한다. 옥상의 살림만 맡아도, 내 일이 반은 줄어드는 것 같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위태로와서, 재활용쓰레기 수거는 말렸다. 그러나 한 번 맘먹은 걸 꺾는 영감이 아니다. 그리 앓고도 고집은 여전히 건재하구먼. 내친김에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니, 이제는 아침밥만 맡으면 원위치 되는 겨? 그래도 대형병원에는 예약일이 되면 잊지 말고 가야지.
다음 날.
아침을 지으려고 일어나 주방으로 나서니 오호~라.
돌솥에 밥이 앉혀져 있다. 뒤를 돌아다보니 영감이 씩 웃는다.
나는 다시 돌아서서 끓어오르는 밥솥의 뚜껑을 열며 속으로 외친다.
"아침밥 안 앉쳐도 좋고 집안 일 돕지 않아도 좋으니, 다시는 그리 앓지 마시오."
"결혼 전에 본 내 사주팔자에는 내가 복이 많다 했지요. 그래서 당신 의 배웅을 받으며 먼저 간다고 했으니, 당신은 내 뒤에 천천히 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