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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마누라의 볕 좋은 하루


BY 만석 2023-05-03

지난 달 4월 23일.
살구꽃님의 계단대청소를 했다는 글을 읽고는 마음이 급했다.
나도 계단청소를 한 지가 퍽 오래 되었는데...

마음을 먹고 계획을 잡았더니, 에구머니나 비가 내리신다네.
"오늘 밤 늦게는 비가  내리겠습니다."
"내일 아침엔 량은 적지만 비가 내리겠습니다."하는 일기예보가 연일 나온다.

"비가 나리면 신발에 흙을 묻쳐들여 안하느니만 못하지."
"양이 적게 부실부실 내리시는 비는, 세찬 빗줄기보다 더 지저분해진다는 말씀이야."
쳇~! 이래 저래 일주일이 흘렀다.

어제 갑자기 계단청소가 하고 싶어졌다.
바지 가랑이를 둥둥접어 올리고, 소매도 야무지게 걷었지.
세제를 대야에 풀어 솔을 띄우고 계단으로 나선다.

어~라. 영감이 있어야 물을 나르며 도와줄 터인데 그새 어디로 튀었나.
세제 푼 물을 듬성듬성 뿌리고 솔을 세차게 힘주어 문질렀지.
아구야~. 까짓! 영감 몰래 해 놓고 보란 듯이 뻐겨야지.

아랫계단까지를 문지르고 휴~! 허리를 펴니
어머나~! 윗쪽 현관에서 물이 줄줄 쏴~ 흘러내리네.
어디로 내뺐는 줄 알았던 영감이 호수를 연결한 모양이다.

ㅎㅎㅎ. 청소 시작하기 전엔 그닥 지저분한 줄 몰랐더니
맑은 물 흐르도록 욕심껏 세척을 하고나니
오호라~! 반질반질 계단이 그 전엔 지저분하긴 했나 보다.

허리 펴고 젖은 옷 벗어 목욕재가하니
볕에 마른 깨끗한 계단을 자꾸만 보고 싶다.
게으른 마누라의 볕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