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버스기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2,163

아 옛날이여


BY 만석 2023-03-07

"쿵!"
"쾅!"
"쾅!"
"우당탕!"
"쾅! "

겨우 잠이 들었을까?
나는 공중잡이로 침대에서 솟아오르 듯 일어나 앉는다. 옆 침대의 영감도 놀란 눈으로 일어나 앉는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러나 말을 잇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눈만 굴리고 있다.
"뭐야? 우리 대문이야요?"
"그런데?! 우리 대문인가본데?"

영감은 어느 새 벽에 걸린 바지를 걷어, 급하게 다리에 끼고 있다.
"여보. 나가지말아욧!"
"응?!"
"지하실 총각들인가 본데... 낮에 방 비우라고 했더니...."사색이 되어 영감을 올려본다.
"ㅆ~ㅍ. 집이나 하나 갖고 있다 이거지? 나와~. 나오라구~!" 밤 공기라서 소리가 크게 울린다.

"나가봐야지 밤새 시끄러워서 어째. 이 XX들."
영감은 제 성질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하다. 총각들을 다스리기보다 영감을 달래야 한다. 영감이 나아가서 마주서보았자, 저 거친 녀석들을 당신 맘같이 제압을 하겠는가. 막 되어먹은 것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영감이 이겨 먹겠느냐는 말이지. 나도 겁이 나서 신고할 생각도 못하고 오돌오돌 떨고 있다. '누군가 이웃에서 신고를 좀 해줬으면 좋으련만.'

아니다. 영감은 내 말을 잘 듣고는 허리에 손을 얹고 씩씩거리고 섰지만, 걱정은 아랫층의 큰아들이다. 아들이 저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라도 깨면, 큰 싸움이 될 게뻔하다. 아들도 고단수의 유단자라서, 붙으면 아마 지지는 않으려할 걸?!  저 녀석들이 무기라도 쓰면 큰일이 아닌가. 이래서 사람이 상하고 원수가 지고 하는 것을. 이젠 아들의 잠을 깨울라 싶어서,  '나라도 나가서 저 녀석들을 달래 볼까?'하는데 경찰 싸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제발 우리 집으로 왔으면...'

싸이렌 소리가 대문 앞에서 멎는다. 옳다구나. 이웃에서 누군가 신고를 한 모양이다. 그래도 나가지는 못하겠다. 한동안 싱갱이를 하는 듯하더니....아니, 놈들도 경찰은 무서운가보다.
"아이구 아저씨 걱정 말고 가세요. 우리도 들어갈께요." 좀 덜 취한 녀석이 경찰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제법 애교를 부린다.
"어서 들어가요. 또 시끄럽게 해서 신고가 들어오면 우리도 또 옵니다." 경찰의 말은 잘 듣는다.
아래가 조용해지자 나는 이제야 펄썩 주저앉는다. 영감도 쓴 입맛을 다시며 혀를 찬다.

우리는 요사이로 수입이 없이 산다. 다행히 지하에 방이 넷이 있어서 방 둘씩을 한 가구로 세를 들였었다. 용돈이라도 얻어 쓰자는 계산이었다. 그동안은 참한 사람들이 들어서 쏠쏠하니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요번에 든 사람은 적잖게 속을 썩인다. 우리 방을 얻어서 '화토방'을 차려놓고는, 사람들을 끌여들였다. 영감이 그 꼴을 두고 볼 양반인가. 방을 빼라고 했다. 이사비용을 내란다. 거기에 덧붙여 자기도 보증금 없이 월세를 놓았다고, 이사비용을 이중으로 내라한다.

나는 이사비용이 일,이 만원이 되는 것도 아니니, 계약한 날까지 두자 하니, 성질 낄끔한 영감이 그 꼴을 두고 보겠는가. 이사비용이고 소개료고 당장 줄 터이니, 방을 당장 빼라고 영감이 엄포를 놓는다. 화투방이 범법이기도 하거와, 그걸 구경만 할 영감이 아니지. 화투방을 드나드는 녀석들이 어디 참한 구석이 있는가. 공연히 젊은 혈기에 일을 낼라 싶어서 가슴을 졸이기를 몇몇 밤. 그래서 사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게 아니던가. 내 일찌기 누구와 마음 상하게 하고 살지는 않았거늘....

우리 방을 얻어서 화투방을 차리고 다시 삭월세를 받는 여자에게, 젊은녀석들은 엄마라고 했다. 나는 이제부터 그 엄마라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바빴다. 안 좋은 꼴을 보게 될까봐 나오지 않는 웃음도 흘리며, 그 엄마라는 여자를 극진히 대접했다. 저들도 양심은 있는지 아니면 받아먹은 소개비며 이사비용에 흡족했는지, 곧 내 집을 떠났다. 그래도 어린 손주도 있고 아들 딸들도 드나드니, 어디서 만나면 해꼬지를 할라 싶어서, 나는 오랫동안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영감을 달래고 아들이 모르게, 그리고 그 엄마라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어 내보내느라고, 는 된통 몸살을 앓았다. 방도 두어 달 비워 두었다. 부동산에서 전화가 뻔질낳게 오지만, 차마 또 어떤 사람이 오려나 겁이 난다. 방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이젠 예사로 보이지가 않는다.
휴~! 그럼 그렇지. 남의 돈 먹기가 어디 쉬울라구. 그저 내 힘들이고 수고해서 생기는 수입에 마음이 편하지. 내 육신은 고달파도 말이지. 아니, 세 없이 혼자 집 지키고 살 때가 좋았는데....아~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