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려먹을 사람을 부려먹어야지.
갈빗뼈와 어깨가 골절이라고 꼼짝도 말고 두어 달 얻어먹으라 했겠다? 누구한테?
영감과 단 두 식구 살다가 마누라 꼼짝을 하지 말라 하니, 하나 남은 영감을 부려먹어야 할 판.
"사람은 쓰지 말아라 내가 다 할 테니..."
그러나 영감이 하는 일마다 내 눈에 차지 않으나, 그래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애쓰는 모양새가 가소로와서 한쪽 눈 질끈 감고는. 그래도 날 잡아잡수 했겠다?
한 달하고도 열흘을 마음먹고 중환자 노릇을 하고, 오늘은 작심을하고 일어서지 않았겠나?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도 자빠지고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데에서도 와장장 갈비가 나가고 어깨죽지가 고장이 났으니, 이런 멍청한 마누라를 보았나. 사람을 쓰지 말자고 당신이 다~ 한다더니, 이제 신물이 나는지 가끔 투정을 하길래.
'애썼수!' 한마디 하고 일어났더니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허긴. 결혼 후 이렇게 알뜰하게 영감을 부려먹기는 내 생전 처음이었지. 꼼쩍도 하지 말래잖어? 의사도 영감도.
처음엔 아주 반들반들하게 잘 씻고 잘 닦더니, 긴병에 효자 없다더니 끝판엔 도망도 자주 가고 찾아도 숨소리도 없더란 말씀이지. 영감이 무려 한 달을 잘 버텨 주기는 했지만 아랫층 며느리의 도움도 적지는 않았었지. 막내딸이 배달시키는 반찬에 이제 신물이 날 듯하니, 맛 좋던 반찬도 입 안에서 와글거린다. 젊은 사람들은 세상을 참 쉽고 편하게들 살더구먼. 해 놓은 조림반찬에 익혀놓은 새콤한 김치도 먹을만은 하고, 뼈 발라놓은 생선이며 닥달해 놓은 치킨종류도 손에 묻히지 않고도 끝물까지 빨아먹으니 어쩌면 이렇게 편한 세상에 살고 있을꼬.
가만 있자. 그래 반찬은 그렇게 편하게 먹었다마는.....아니, 영감은 스뎅냄비뚜껑에 뭘 구워 먹었울꼬. 계란후라이? 영감이 자신하고 잘하는 건 오직 계란후라이다 ㅋㅋㅋㅋ. 후라이 팬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데 어째서 냄비뚜껑마다 계란 후라이를? 그렇지 않고는 냄비뚜껑이 이 지경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별 일이다. 재주도 좋다. 냄비뚜껑에다가 뭘 했느냐고 물으니,
"아무리 닦아도 안 되더라."고 동문서답이다. 제길~헐. 멀쩡한 냄비뚜껑을 모두 모아다 작살을 내어 놓았다. 그래도 영감~. 아무튼 며느리가 올라다녔어도 당신이 젤루 수고 했시다 ^^ 나도 한 때는 ㅋㅋㅋ ......흉 봐도 괜찮어요~.
그땐 우리 영감도 괜찮았네.
대만여행에서...내가 몇살이었을꼬? 50?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