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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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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와 자존심


BY 귀부인 2023-01-12

 

  "오늘은 안 가면 안되냐?"

  "가셔야 돼요. 아들들이 돈을 냈는데 안 돌려 준대요 어머니."

  "아,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뭐더러 돈부터 미리 냈디야아"

  "어머니가 센터 가셔서 잘 노시고 그러셔야 아들이 걱정 안하고 맘 편히 공부할   거 아니예요."

  센터 가시기 싫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면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들먹여야 한다.



  꽃 분홍색 잠바를 입혀드리고 새로 산 신발을 꺼내 신겨 드렸다. 차가 집 앞까지 오기 때문에 미리 나가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어머니는 큰 길가로 나가신다. 지팡이를 챙겨드리니 아녀, 아직 지팡이는 안 짚어도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90도로 꺾어진 허리에 뒷짐을 지고 한발 한발 걷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옆에서 잡아 드리려 하면 그것도 싫어 하신다. 아직 혼자 걸어 다닐 수 있다고. 겨우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멈추어 서서 아이고, 허리야 하며 후유! 한숨 한 번 내 쉬고 다시 허리를 숙인다. 멀지 않은 큰길까지 가는데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추신다.

 



  동네 이장님한테 선물로 받은 어르신용 유모차도 있고, 내가 사다 드린 지팡이도 두 개 씩이나 있는데 어머니는 유모차도, 지팡이도 절대로 의지하려 하지 않으신다. 내 팔도 거절하신다.  당신은 그것들을 의지할 정도로 늙지 않았다고, 아직은 깨딱없다고 하신다. 어머님 생각에 혼자 걷지 못하고 무언가를 의지하면 인생 끝장난거라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다. 힘들어도 어머니 혼자 힘으로 걷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 강제할 수가 없다.



  어머니 방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면 새삼스럽다. 갓 시집 와서 찍은듯한 새색시 적의 사진 속 어머니는 또렷이 쌍꺼풀 진 눈에, 통통한 볼, 고대기로 잔뜩 힘을 준 봉긋한 머리 하며 여간 이쁜게 아니다. 군복 입으신 아버님 옆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어머님이 소녀처럼 수줍은 표정을 하고 있다.



  스무살에 시집 와 아버님은 군대 보내고, 시할머니 시집살이에 뒷산에 올라가 자주 우셨다는 어머니, 9남매의 장남이신 아버님과 결혼해 어머님의 시동생들, 시누들 공부 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내셨다.


  "하이구우, 내가 얼마나 고상 했는 중 아니? 시동상들, 시누들에 내 새끼들까지 아침마다 도시락 다서, 여섯 개 사는 걸 몇 년이나 했는지 몰러. 리어카에 채소 실어다 장에 내다 팔기는 또 얼마나 했고. 꼭두 새벽부텀 밤 늦게 까지 손톱이 빠지도록 일했어. 그 많은 식구들 보리방아 찧어 밥해맥이 가믄서. 젊은 날 몸 안 애끼고 

그 고상 했더니 허리가 고만 빙신 되고 말았어."

 "어머니,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저는 어머님처럼 못 할 것 같아요."

 "그럼, 요즘 누가 그렇게 살가디? 다 도망가지. 옛날이니께 그러고 살았지. 이팔청춘 다 갔다아."



  허리 아프다는 소리 하실 때 마다 나누는 우리의 대화다. 말씀으로는 허리 빙신이 돼얐다 하시지만 어머님의 인생을 후회 하시거나 아버님을 원망 하시는 것 같지는 않다. 서사를 풀어내듯, 당연한 의무를 다 마치신 것 처럼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이 존경스럽다.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굽은 허리가 안스럽다. 



어머님 의지대로 지팡이 없이 한 발자국이라도 걸으실 수 있는 날이 길었으면 좋겠다.